고려 현종(顯宗) 때 문신이자 장군인 강감찬(姜邯贊,948~1031)은 문곡성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다고 한다. 북두칠성 자체가 북극성의 명령을 지시하는 하늘의 높은 별이고, 그 중에서 네 번째 별인 문곡성은 ‘현명문곡뉴성군’이라는 별호를 지닌 영명하고 위엄있는 별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 글을 짓고 쓰는 데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한다.

▲ 건원 윤상철 선생

강감찬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서 집으로 들어갔고, 곧 이어서 장군이 태어났다고 해 그 생가터를 ‘떨어질 락, 별 성, 터 대’자를 써서 낙성대(落星垈)라고 부른다.

현재의 지명은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이고, 강감찬 사후에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공을 추모해서 그 생가터에 삼층석탑을 세운 것이 남아있다.

강감찬)이 한양 판관이 되었을 때 한양부 안에 호랑이가 많아서 백성들이 불안해하자, 강감찬이 부윤에게 “3~4일만 기다리면 내가 제거하겠습니다”라고 하고는 “내일 새벽에 북동에 가면 늙은 중이 바위 위에 앉아 있을 것이니, 네가 불러서 데리고 오너라”하고 아전에게 명했다.

아전이 그가 말한 곳에 가보았더니, 남루한 옷에 흰 베로 만든 두건을 쓴 늙은 중 한 사람이 새벽 서리를 무릅쓰고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아전을 따라와서 판관에게 머리를 조아리자, 강감찬이 중을 보고 꾸짖기를 “너는 비록 금수이지만 또한 신령한 동물인데, 어찌 이와 같이 사람을 해치느냐. 너에게 닷새간을 줄 터이니, 추한 무리를 인솔해 다른 곳으로 옮겨라”고 하니, 중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부윤이 크게 웃으며 “판관은 잘못 본 것이오, 중이 어찌 호랑이겠소?”하니, 강감찬이 늙은 중을 보고 “본 모양으로 화하라” 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는 한 마리의 큰 호랑이로 변해 난간과 기둥으로 뛰어오르니, 부윤이 넋을 잃고 땅에 엎드렸다. 강감찬이 “그만두어라”고 하니 호랑이는 중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공손히 절하고 물러갔다.

이튿날 부윤이 아전에게 동쪽 교외에 나가 살펴보라고 하니 늙은 호랑이가 앞서고 작은 호랑이 수십 마리가 뒤를 따라 강을 건너가고 있었다. 이로부터 한양부에는 호랑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밤에 시끄럽게 우는 개구리를 퇴치하고, 모기를 퇴치했다는 등 여러 기이한 전설이 남아있다.

강감찬의 처음 이름은 은천(殷川)이며, 복시에 장원 급제해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지만 몸집이 작고 귀도 작았다고 한다.

송나라에서 사신이 왔을 때 용모가 아주 크고 위엄스럽고 가난한 어떤 선비에게 옷을 단정히 입혀서 앞줄에 서게 하고, 강감찬은 헌옷을 입고 그 밑에 있었는데, 송나라의 사신이 가난한 선비를 보고 “용모는 비록 크고 위엄이 있으나 귀에 성곽이 없으니, 필연코 가난한 선비다” 하고 지나치다가, 강감찬을 보고는 엎드려 절하며 “무곡성이 오랫동안 중국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 여기서 뵙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강감찬이 문곡성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에 글도 잘 하고 귀신의 조화도 잘 알았으며 앞날을 예지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우리 모두 머리 위에 뜬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현명문곡 뉴성군’을 소리내서 부르고, 강감찬 장군을 내려주셔서 이 나라를 지켜주셨듯이 앞으로도 잘 보살펴 달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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