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보장해 달라”… 유엔 자유권 권고 수용 요청

▲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병역법에 합헌 결정을 내린 지난 2011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 제88조는 제1항 제1호 위헌제청’ 선고 재판이 열리고 있는 장면. (사진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여호와의 증인 청년들이 청와대에 ‘양심적 병역거부’ 보장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or)는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과 집총(총을 잡는 행위)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청원서에 이름을 올린 정모 씨 등 488명은 26일 청원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가 2006년부터 4차례 걸쳐 자유권규약 위반 결정을 내렸다”면서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인 한국이 유엔의 반복된 권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7년 종교적 병역 거부자가 어떠한 정치·종교적 이유로도 차별받아선 안 된다고 결의한 바 있다.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한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며, 병역법 88조 1항에 따라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친 상태다. 청원자들은 “최근까지도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합헌으로 판단했지만, 일선 법원들이 이례적으로 위헌심판 제청을 계속 반복하는 상황”이라며 “대통령이 한국의 대외적 위상과 국격에 걸맞은 방법으로 평화로운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오두진 변호사는 “60여 년 동안 한국에서 1만 7200여 명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군형법 또는 병역법에 따라 도합 3만 2500여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며 “이 가운데 5명은 군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국가에 대한 어떤 반발행위에도 참여한 적이 없고 정치적 선동과도 무관하다”며 “하지만 지난 60여 년간 이들이 수감 생활뿐 아니라 전과 기록 탓에 공직, 공무원, 대기업 취업 기회가 모두 박탈되는 등 차별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이들의 전과기록 말소 ▲피해 배상금 지급 ▲양심적 병역거부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오 변호사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최장기간, 최다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징역형 처벌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도입 ‘시기상조’ 판단 무기한 보류
10년 전 헌법재판소는 2004년 8월 종교적 병역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더 확산되며 2005년 1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종교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국회와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해 정치권과 종교계 등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9월, 2009년 초부터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이 36개월 동안 한센병원이나 결핵병원 등에서 근무하면 병역 이행으로 간주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개신교 보수교단 등의 거센 반발로 이 결정이 보류됐다. 이에 국방부는 2008년 12월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며, 최종 결정은 무기한 보류한 상태다.

오 변호사는 “정부가 그동안 일반 대중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문제를 해결할 적기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며 “미 연방대법원이 1943년부터 인간의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 언론·출판·종교·집회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는 다수결이나 투표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는 태도를 보여온 점을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실태와 구제 노력 등을 정리해 방한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도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2009년 현재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83개국 가운데 31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로는 대만,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20개국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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