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 다행이다!’

만약 오른 손가락을 절단하게 된다면 그동안 목숨을 걸다시피 해온 서예는 영영 할 수 없게 되지 않는가? 그 경황에도 이런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다행히 나중에 큰 탈 없이 낫게 되어 오늘날 양손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생각만 해도 참으로 아찔한 일이었다.

결국 그곳 봉제공장도 못 버티고 나와 이번엔 종로 1가의 종각근처 다방에서 구두닦이를 했다. 소위 찍새라고 해서 다방을 돌아다니며 손님의 구두를 모아 구두병원에 갖다가주는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다방을 돌며 닦을 구두를 모으는데 한 손님이 그를 불렀다. “이봐! 잠깐 나 좀 보자고.”

? 부르셨나요?”

한한국이 다가가자 멋진 차림의 신사가 말을 건넸다.

하아, 총각! 범상치 않은 관상이야. 이런 데서 구두나 찍어 나를 상이 아니라고. 이런 현실이 딱하구먼, 쯧쯧!”

신사가 안타까운 듯 혀를 차며 그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이란 이름을 차마 밝힐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지어왔다는 이름인 한지섭이라고 대답했다.

한지섭 군! 용기를 잃지 말게. 고생은 한평생 하는 게 아냐. 자넨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니까!”

이렇게 격려를 하고 신사는 가끔 만날 때마다 차를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일도 언제까지나 할 수가 없어 글씨와 관련이 있는 고려 속기학원이란 데를 들어가 한때 속기를 배우기도 했다. 한샘학원에서처럼 지도원으로 들어가 청소를 하고 강사 보조를 하면 수강비를 내지 않아 몇 달 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다음에는 POP 디자인학원에 들어갔다. 당시에는 디자인 붐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암튼 그곳에서 한한국은 나중에 서화(書畵)에 큰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았다. 디자인 공부가 오늘날 서예로 그림을 그리는 평화지도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이다.

,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한데 무슨 공부를 더 한담…….”

하는 수 없이 한한국은 침식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단칸방 누나의 신세를 지는 일도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웨이터 모집! 침식 제공!>

우연히 개봉동의 한 골목을 지나가는데 이런 쪽지가 빨간 매직으로 씌어져 있었다. 순간 한한국은 다시 살 길을 찾았다 싶어 스탠드바의 문을 밀었더니 마치 악마의 아가리처럼 삐드득 열렸다.

저어, 웨이터 모집한다고 해서…….”

괜히 후들후들 떨려 와서 한한국이 가까스로 입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가득 찬 홀 안에서 의자를 붙여놓고 누워 있던 인상 사나운 사내가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웨이터? 해봤어?”

아녀라우, 경험은 없어라잉.”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향 사투리가 튀어나와 이렇게 대꾸하자 사내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니기미, 징한 것! 워디서 왔어라잉?”

이리하여 한한국은 그 자리에서 스탠드바의 웨이터가 되었는데 미성년자라서 나이를 숨기고 보조 웨이터가 되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희망 ●제작년도: 2013년 ●작품크기: 높이 40㎝ x 둘레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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