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문화 칼럼니스트

물결, 그것은 참으로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물결이었다.

일본 열도를 뒤덮고 중국 대륙을 거쳐 대만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를 돌아, 이제는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한국의 물결, 한류(韓流). 참으로 감미로운 이름이다.

그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듯 싶다. 배용준과 최지우가 출연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방송을 타면서 일본의 아줌마 부대들이 열광했고, 그것이 거대한 물결의 진원이었다.

언론은 당시, 잃어버린 십 년에 대한 우울함과 중년의 나이에 뒤따르기 마련인 로맨스에 대한 갈증이, 열도의 아줌마들로 하여금 한국의 지순한 러브스토리에 빠져들게 했다고 분석했다.

열도의 아줌마들은 안방에서 뛰쳐나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겨울연가’ 주인공들의 흔적을 좇아 강원도의 설경을 누볐으며 거리의 음식을 탐했다.

춘천의 한 허름한 주택은 이웃나라 관광객들의 방문으로 몸살을 앓았고 덕분에 유명세를 치렀다. 물결은 이렇게 작은 일렁임으로 시작됐다.

홍콩의 거리에는 ‘대장금’의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고 중국 대륙의 공장에선 야근을 시키려면 ‘대장금’이 방송되는 날인지 먼저 확인해야 할 지경이었다.

한국의 청순하지만 야심 찬 여주인공의 음식과 사랑에 대한 집념과 진취가 대륙의 심금을 울렸고 젊은이들은 한국의 노래를 불렀으며 한국의 비트에 맞춰 춤을 추었다.

한국의 물결, 한류에 몸과 마음을 담그는 것이야말로 진정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는 진취적 기상을 갖춘, 패기 넘치고 세련된 젊은이라는 그들만의 공감이 굳건하게 자리잡기까지 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 제품만을 내놓는다는 베트남의 가전제품 매장에도, 그들의 조상신들이 차지하고 있던 가장 좋은 자리에 삼성과 LG의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물결을 타고 온 것들이다. 이란에선, ‘주몽’이 국영방송에서 전파를 타 무려 90퍼센트 가까운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드라마 주인공 송일국이 그곳을 방문, 무수한 청춘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덕분에 중동의 모래 바람을 헤치고 한국과 한국의 모든 것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계기가 마련됐다.
         
한류는 이제, 어느 지역에 한정 지어진 특수하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드라마와 음악에서부터 출발한 그 물결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제품과 심지어 스포츠와 음식, 순수 예술 등 그 영역이 따로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세상 어느 곳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거침없이 나아가는 도도한 물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비관이 없지 않았지만 그 물결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다.

한류는, 외환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우리에게 어느 날 불어 닥친 경이로운 위안이었고 자긍심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대한 바깥 세상의 긍정과 인정, 부러움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것은, 세상이 다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게 하였던 월드컵의 열기와 아울러 더욱 화려하게 타올랐다.

어떠한 위기라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못해 낼 게 없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우리 모두의 확인이기도 했다.

한류는 그러나 자아도취적 자만을 경계한다.

안일한 마음가짐과 미흡한 준비, 성실하지 못한 자세로 한류의 흐름에 올라타 손쉽게 한몫 보려다 실패하거나 망신당한 부끄러운 모습들 또한 숱하게 보아온 게 사실이다.

모처럼 찾아온 거대한 행운의 물결이 제 생명을 잃지 않고 그 도도한 행보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하려면, 우리 모두의 노력과 관심이 절대 필요하다.

물결의 생명은 우리 손에 달렸다. 그것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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