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전 청와대 홍보수석

필자는 2006년 9월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하고 있던 자이툰부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국민의 격렬한 찬반논란 끝에 가까스로 파병됐던 자이툰부대가 현지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 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던 시점이었다.

당시 국방홍보원장이던 필자의 부대방문 목적은 명목상 ‘장병격려’였으나 내심으로는 자이툰부대가 현지인들로부터 진정으로 환영받고 있는지를 확인하고픈 생각도 있었다.

적군과의 전투가 아닌 주둔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선무활동하는 민사작전(民事作戰, Civil Affairs Operations) 활동상을 담은 동영상 시청과 실제 작전참관을 통해 우리 자이툰부대가 이라크인, 특히 쿠르드족이 다수인 현지인들로부터 매우 높은 환심을 사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군과 영국군 등 현지주둔 동맹군 관계자들로부터도 자이툰부대의 민사작전이 최고의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었다.

황중선 부대장은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을 ‘존중과 배려’의 정신으로 대했던 게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황 부대장은 “우리는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통해 피점령과 점령이라는 전쟁의 양극단을 모두 경험한 민족인데 바로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의 처지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존중과 배려’의 정신이 그 어떤 물질적 구호활동보다 더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화해와 통합’이란 화두가 넘쳐나고 있다.

이희호 여사가 서울광장에서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이 남편의 유지”라고 언급하자 즉각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국회가 대화와 상생의 장으로 거듭나자”며 여야 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화해·관용·타협과 통합을 강조했다. 정치권이 모처럼 상생과 화합을 합창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언급한 화해와 용서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와 탄압을 가한 자가 먼저 선창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고인은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려 하는 등 정치적 폭압을 가한 자들을 용서했었다. 또한, 대통령 취임연설에서도 정치 보복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이 말의 참뜻은 고초를 겪은 피해자가 용서했듯이 가해자들도 이제 참회하라는 준열한 역설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역, 이념, 남북, 계층, 노사, 세대, 성별 간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의 잇단 강압일변도 국정운영으로 용산철거민 참사를 비롯 남북대화의 단절, 노사문제의 심각화와 미디어법 파동 등 사회적 갈등이 날로 더 고조되고 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갈등을 조장한 측에서 먼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에게 묻은 흠결을 탓하는 한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불가능한 법이다.

다수의 힘을 믿고 여론을 무시한 채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는 등 일방통행식 행보를 펴왔던 정부 여당이 화해를 주창하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식’에 다름 아니다.

자이툰부대는 파병 전부터 매우 치밀한 사전준비를 거쳤다. 왜 미군이 그 많은 원조물자를 퍼붓는데도 현지인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론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존중과 배려’의 정신이었다. 자이툰부대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 하기 위해 동맹군 측의 거듭된 요청으로 자이툰부대가 펴낸 ‘민사작전 교범’을 관통하는 기본정신도 역시 존중과 배려였다.

피부와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역만리에서 현지인들과 정서적 통합을 이뤄냈던 우리가 왜 같은 민족끼리는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이처럼 으르렁댈까?

상생과 통합은 사회 각 계파와 정파가 존중과 배려의 정신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오늘 창간하는 천지일보가 이 정신을 우리 사회에 고루 나눠 갖도록 하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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