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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수란 기자] 국내에서 유통되는 정수기는 역삼투압방식과 중공사막방식이 있다. 이중 상당수가 역삼투압방식의 정수기다. 역삼투압 정수기는 인공으로 만든 미세한 막에 삼투압의 반대 방향으로 강한 압력을 가해 물을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역삼투압 막의 구멍은 머리카락의 만분의 일 크기로 아주 작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금속 무기물질, 나트륨, 질산성 질소와 유기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미네랄까지 제거한다는 단점이 있다.

중공사막방식은 혈액투석을 위한 신장투석기에 사용하는 중공사를 수처리 방법에 응용한 것으로 미세한 기공으로 물을 투과시켜서 바이러스, 세균 등 불순물을 걸러내지만 미네랄은 남겨둔다는 장점이 있다.

◆정수기 때문에 수도세 ‘줄줄’?

국내 정수기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역삼투압 정수기는 많은 양의 수돗물이 수압에 밀려 배출구로 버려진다. 실제로 본지가 실험을 해본 결과, 일반 가정집에서 사용되는 정수기에서 마실 물 1리터를 얻기 위해 배수관을 통해 버려지는 물의 양을 측정해봤더니 5리터나 됐다. 1리터의 물을 마시기 위해선 5리터의 물이 낭비되는 셈이다.

정수기를 산 소비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정수기 회사들은 이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소비자 대부분은 물이 낭비되는 사실조차 모른다. 버려지는 물의 비용이 결국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줄줄 세어 나가는 셈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이성재 과장은 “대략 추산하면 수돗물을 마시는 것에 비해 정수기 물을 마실 경우연간 40만 원의 비용이 더 든다”고 말했다. 예컨대 서울시에 설치된 정수기는 200만여 대로, 한 대당 40만 원의 연간 비용이 지출된다고 봤을 때 8000억 원 정도가 소모되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조봉연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이 방식은 물 100을 가하면 40%는 얻고 60%는 폐수로 버려지게 된다”면서 물의 유실률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수기 업체 관계자는 “정수기 설명서에 손실되는 물은 생활하수로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놨고 이를 문의하는 고객에게도 설명해준다”고 말했다.

◆미네랄 없는 물=죽어있는 물?

또 하나의 논란은 이 방식으로 걸러진 물엔 미네랄 성분이 함께 제거되기 때문에 우리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0.0001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필터로 물을 거르게 되면 대부분 오염물질은 제거되지만, 칼슘과 철 등물 속에 녹아 있는 유무기 물질까지 걸러지게 된다. 이렇게 ‘깐깐하게’ 걸러진 물에는 미네랄이 없다. 초순수물 즉, 증류수에 가까운 물이 된다.

물에서 얻을 수 있는 미네랄은 칼슘, 칼륨, 마그네슘 등이다. 우리 몸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동호 소화기내과 교수는 “미네랄은 인체를 구성하는 성분으로, 세포·신경 전달 등 자동차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네랄이 부족하면 자기조절을 못하고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대장암까지 생길수 있다”면서 “미네랄을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미네랄이 들어있는 물을 먹어야 한다. 미네랄이 없는 물은 ‘죽어있는 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수기 회사에서는 굳이 물에서 미네랄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 음식물 섭취로 인체에 필요한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수기 회사 측은 “물을 통해 미네랄을 충분히 섭취하려면 하루에 엄청난 양의 물을 마셔야 하는데 불가능한 것 아니냐”면서 “굳이 물에서 미네랄을 섭취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 증류수에 가까운 초순수 물은 자칫 관리를 소홀히 하면 오염될 확률이 높다. 대기와 접촉 시 쉽게 변질되고 세균 번식이 쉽다.

인하대학교 김정환 환경공학과 교수는 “수돗물은 잔류염소소독을 통해 물이 재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반면 (정수기 물처럼) 잔류염소가 제거되면 재오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알고보니 ‘산성수’ 벌컥벌컥

역삼투압 정수기 물은 산성을 띤다. 수돗물은 혈액과 같은 약알칼리성인데 역삼투압방식 정수기를 통과하면서 ‘산성수’로 바뀌게 된다.

사람의 몸에 흐르는 체액과 혈액은 약알칼리성으로 유지되는데 산성화되면 몸은 쉽게 피로해지고 병에 걸리기 쉬워진다. 산성수를 장기적으로 먹게 되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동호 교수는 “우리 몸은 pH7.4로 약알칼리성을 띠는데 이 농도와 가까울수록 친화력이 좋아 체내에 잘 흡수된다”면서 “산성수를 계속먹게 되면 몸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봉연 교수는 “우리 몸에 금방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병이 생겼을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수기 업체는 정부에서 지정한 수소이온농도의 범위를 충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지정한 수소이온농도는 pH5.8~8.5이다. 수돗물은 pH6.8~7.8로 중성이거나 약 알칼리성을 띠며 정수기 물은 대부분pH6.5 정도로 산성을 띤다.

정수기 업체 관계자는 “먹는 물 기준에 부합된 수치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렇듯 역삼투압 정수기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선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결국 어떤 물을 먹느냐는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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