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지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계획을 세밀하고 합리적으로 짤수록 돈의 낭비를 줄일 여지는 커지게 된다. 그런데 지출 계획만큼 중요한 일은 돈을 쓰고 난 뒤 지출 내역을 점검하는 작업이다. 계획에 따라 돈을 썼는지, 낭비된 부분은 없었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해야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다음 지출 계획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다음에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부 예산 결산심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정부의 각 부처가 지출한 예산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예산 집행이 계획대로 올바르게 이뤄졌는지, 중복 지출과 낭비는 없었는지 등을 파악해 새해 예산 편성에 반영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국회의 사정은 녹록하지 않다. 9월 정기국회 개회가 일주일도 안 남은 상황이지만, 여야는 2012년도 결산심사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전에 이뤄져야 할 각 상임위 예비심사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물리적으로 결산안 본회의 의결까지의 일정은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국회법에 따르면 결산안 처리는 정기국회 전에 마쳐야 한다. 국회가 세운 법정시한을 국회 스스로 또 한번 어기는 셈이다. 여야가 뒤늦게 결산심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국정감사와 새해 예산안 심사 등 일정이 줄줄이 뒤로 밀릴 공산이 크다. 촉박한 일정 탓에 심도 있는 검토를 하는 것도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결산안을 질질 끌다가 끝내 형식적으로 처리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회의 결산안 늑장 처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4년 조기결산제 도입 이후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처리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매번 시한을 넘겨 뒤늦게 결산에 들어가서는 2~3일 사이에 이른바 ‘날림’으로 처리하던 관행이 반복됐다. 이번에도 졸속 처리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야는 지난 두 달간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국정조사 진행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정쟁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런데도 또다시 결산안 처리 파행으로 정쟁의 전주곡을 시작한 정기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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