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다음 달 18일까지 종교인들 의견 수렴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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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놓고 종교계에서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공론화를 거쳐 종교인 납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개신교에서는 찬반 논란이 거세다. 반면 불교계는 찬성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1일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과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미래목회포럼, 한국교회언론회 등 교계 기관 관계자들이 한국교회목회자납세대책위원회(목회자납세대책위)로 긴급 소집됐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 자리에서는 목회자 세금납부를 놓고 찬반 공방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목회자 소득을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잡은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반대 입장을 표한 일부 참석자도 있었다.

목회자 소득을 기타소득이 아닌 ‘종교인세’ 혹은 ‘성직자세’로 새로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이에 목회자납세대책위는 교계 내부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수렴해나갈지 고심하고 있다.

8일 정부가 종교인 과세에 대해 발표한 직후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9일 성명을 내고 정부의 종교인 과세 방침이 입법 의도를 살리지 못한 기형적인 법적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종교인의 소득을 사례금이란 명목으로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겠다는 것은 종교인들에게 납세의무를 다했다는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장총“ ‘종교의 영역’ 침범 안돼”
지난 19일에는 한장총이 납세 반대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한장총은 이날 열린 ‘제5회 장로교의 날 평가회 및 정책간담회’에서 종교인 과세에 대해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 ‘종교가 국가 권력에 예속된다’ ‘종교의 자유를 스스로 말살하는 것이다’ 등 이유를 들어 납세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날 한장총 사회복지위원장 박종언 목사는 “성직자들의 사례금은 근로의 대가로 받는 근로소득과 사업으로 인한 사업소득으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재부가 확정한 ‘기타소득’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에도 명시되지 않은 종교인들의 소득에 대해 세금을 걷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현재 법에 명시된 근로소득, 사업소득,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는 소득항목을 수정하지 않고 해당사항이 없는 성직자의 소득을 현 법안에 억지로 꿰어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박 목사는 “세법개정안 없이 세법 시행령으로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는 것은 하위법이 상위법을 수정하는 것이므로 절차에도 어긋난다”며 “종교의 영역은 법률로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종교인 과세를 기타소득으로 한다는 것은 종교인을 간이사업자로 보는 것”이라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목회자납세대책위는 이 같이 공방이 치열한 개신교계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가 종교계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한 다음 달 9월 18일까지 보완책을 마련해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아울러 모임의 대표성을 위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협의회(NCCK)의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불교계“ 교계 의견 충분히 반영해야”
일찌감치 종교인 과세에 찬성표를 날린 불교계는 이변이 없는 한 정부결정 방향을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종교인도 예외 없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종단의 공식 입장”이라며 “정부 방침에 따라 종단에서도 납세를 위한 준비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계종은 기획재정부 발표에 앞서 내년부터 총무원 등 중앙종무기관에 종사하는 스님들을 대상으로 소득세 납부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납세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종단 차원에서도 과세에 반대해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교계는 정부가 충분한 사전 대화나 준비 없이 불쑥 발표한 점을 아쉬움으로 드러냈다. 정부가 종교계와 세부적인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과세 방침을 내놨다는 것이다. 이에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부터는 교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기타 소득’ 종교인 과세 빈익빈부익부?
정부는 2015년부터 23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종교인(성직자)을 과세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기재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의 골자는 근로소득 형태가 아닌 사례금 형식의 ‘기타소득’ 형태다. 종교인이 수령한 금액의 80%는 필요경비로 인정해 비과세 처리하기로 하고, 이외 소득에 대해 20%의 기타소득 세율이 적용된다. 주민세 2%는 별도로 부과된다.

이 때문에 저소득 성직자들이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저소득 성직자들에게는 ‘근로소득’으로 과세할 경우가 유리하다. 근로장려금제도(EITC)에 따라 부부합산 연간 총 소득 1700만 원 미만일 경우 연간 최대 120만 원의 장려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진행한 ‘2012한국직업정보 시스템 재직자 조사’에서 성직자 중 천주교 수녀, 원불교 교무, 개신교 전도사 등은 소득이 적은 하위 30위 안에 포함됐다. 재직자 자기보고에 근거해 조사된 결과에서 수녀는 1508만 원, 교무 1522만 원, 전도사는 1708만 원으로 신고됐다. 2011년 조사에서는 천주교 신부가 1661만 원, 수녀 1462만 원, 교무 1490만 원, 전도사 1136만 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액 소득 성직자들은 오히려 부담을 덜었다. ‘기타 소득’으로 적용하면 고액 연봉일수록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재연(통합진보당) 의원은 최대 10배 가까이 납세액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그동안 소득과 관련해 임금을 전제로 하는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근로소득’으로 적용하는 데 강한 거부감을 표해 현재로서는 ‘근로소득’ 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고액 소득 성직자와 저소득 성직자의 소득 차이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종교계가 내달 18일까지 어떤 수렴 안을 정부에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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