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으로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선봉에 섰던 헤르베르트 보타와 신부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허창수 신부. ⓒ뉴스천지
1972년 10월 16일 한국땅을 밟아 40년 가까이 우리나라 인권신장을 위해 헌신한 초대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한국지부장 허창수(68, 독일명 헤르베르트 보타와) 신부가 26일 독일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년간 파킨슨씨병을 앓아왔던 허 신부는 연례적인 독일 연수 중인 26일 혼자 독일 뮌헨 인근의 성 오틸리엔 수도원 주위로 산책을 나갔다가 다음 날인 27일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독일 남부 시골마을 출신인 허 신부는 베네딕트회 신부로 한국에 온 후 유신정권의 인권탄압에 정면으로 맞섰으며, 75년 대구로 내려오면서 그가 있던 대명성당은 ‘데모성당’으로 불릴 정도로 전투경찰이 상주했다. 이로 인해 90년대 초까지 허 신부는 관계당국의 감시를 받아왔다.

대구 남구 대구가톨릭신학원과 경북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를 오가며 저소득 및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 등을 위해 인권활동을 펼쳐왔던 터라 그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72년 탄생한 앰네스티 한국지부는 80년 해산됐다가 92년 정식으로 재건되면서 허 신부가 2003년까지 초대 지부장을 맡았다.

허 신부는 “유신 때에도 외국인 신부라서 할 말은 다하고 살았다”며 “옛날보다 인권상황이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외국인 노동자 처우와 통일, 깨끗한 정치 등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또한 평소 “내가 죽으면 경북 칠곡의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 묘지에 묻어달라”고 했지만 독일에서 눈을 감으면서 성 오틸리엔 수도원 묘지에서 영면하게 된다.

장례미사는 다음 달 1일 오후 2시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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