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人 평화를 말하다 문선명 [2]

▲ 1990년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난 문선명 총재. (사진제공: 통일교)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30대에 통일교를 세운 문선명 총재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해외 선교에 적극 뛰어들었다.

1958년 일본, 1959년 미국에서 그의 선교는 시작됐다. 1972년 뉴욕을 시작으로 1974년까지 4차에 걸쳐 전미순회강연을 펼쳤다.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문 총재와 통일교인들은 인종차별과 무시를 감내하며 선교에 매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76년 9월 워싱턴 광장에서 30만 명이 모여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였다. 미국 종교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976년 문 총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통일교를 세우고 선교에만 전념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대한민국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더 나아가 종교인으로서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싶은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 총재의 소망은 1962년 리틀엔젤스(선화어린이무용단) 창단으로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이 선보이는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는 세계인들에게 신비롭고 신선한 이미지로 남게 된다. 그는 한국 전통문화를 더욱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한국문화재단을 설립
해 다양한 문화, 예술활동을 했다.

문 총재의 노력은 종교를 넘어 정치, 언론, 경제 등에도 미친다. 굶주리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찾아가 배고픔을 달래주며 마음을 위로하고, 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교육에도 힘썼다.

일제 치하의 서러움과 분단의 아픔,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참혹했던 전쟁의 상처, 최빈국의 고통을 몸소 체험했기에 문 총재는 평생 구제사역과 평화운동에 혼신을 쏟았다. 언론에도 관심이 많았다.

세계일보, 미국 워싱턴타임스, UPI 통신 등을 설립해 세계 다양한 소식을 전했다.

◆지구촌 돌며‘ 화해·평화’ 이야기하다

“평화 세계를 이루기 위해 나는 평생 세상의 낮고 구석진 곳을 찾아다녔다”고 회고록에 남긴 문 총재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뿐 아니라 세계평화운동에도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1987년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을 창립해 한반도 평화에 힘을 쏟았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문 총재는 199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하고 ‘마전 주석공관’에서 김일성 주석과 환담을 나눴다. 그해 12월 문 총재가 북한의 김 주석 앞에서도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책상을 치며 호통을 쳐 동행한 이들을 긴장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문 총재의 진심이 통했을까. 이 자리에서 남북한 이산가족상봉과 북한 핵사찰 수용, 남북 경제협력 등 많은 사안들이 논의됐다. 이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은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다. 문 총재의 이 같은 노력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교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1990년에는 모스크바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세계평화 등을 논의했다. 문 총재는 회고록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한국과 수교할 것을 촉구했다고 언급, 곧이어 성사된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2000년 들어 수많은 종교인을 만나 세계평화운동에 대한 깊은 대화와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문 총재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전 세계 종교 지도자를 초청해 예루살렘에서 평화대행진을 열어 종교인과 세계인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또다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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