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술史를 만드는 수집가’ 김달진 미술연구소장
[인터뷰] ‘미술史를 만드는 수집가’ 김달진 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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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김달진미술연구소 김달진 소장이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71 AG展’ 포스터 앞에서 저서인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린 시절부터 수집에 남달라
40년 넘게 자료 모아 독보적

연구소·정보센터·박물관 열고
전시·저술·연구 꾸준히 진행

내년 건물 임대 정부지원 끝나
“政, 지식인프라 투자 아쉬워”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걸어 다니는 미술사전’, 바로 김달진미술연구소 김달진(58) 소장의 별칭이다. 미술자료 수집에 매달린 지 40여 년, 김 소장은 한국 미술자료 수집과 미술역사기록에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2001년 자신의 이름을 건 미술연구소를 세상에 내놓은 김 소장이 하는 일은 크게 ‘정보 제공’과 ‘한국 근현대 미술역사 보존’에 관한 일이다. 김 소장은 2007년 미술자료실을 개관한 이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10년 ‘한국미술정보센터’를 차례로 열고 전시, 미술자료 무료열람 서비스, 자료수집·연구 및 저술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자가 지난달 29일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한국미술정보센터를 찾았을 때 2층 박물관에서는 ‘한국미술단체 100년전(展)’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한국 근현대 주요 미술단체를 중심으로 국내 미술 역사를 짚어보도록 구성됐다. 오래된 팸플릿과 입장권, 노래경연 후 적은 점수표, 회비를 걷은 기록 등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자료들이 가득했다.

한국미술정보센터에는 단행본 2만 2000여 권, 연속간행물 392종 1만 600여 권, 미술학회지 57종 1000여 권, 논문 650여 권 등 귀중한 문서 자료가 많이 보관돼 있다. 특히 작가개인파일 270여 권은 이중섭, 박수근, 백남준 등 주요 근대작가의 도판과 신문 기사를 모은 것으로, 작가들도 놀랄 만큼 꼼꼼하게 수집돼 있다. 출판된 지 50년이 안 된 자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많은 책 중 김 소장의 저서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1980년대부터 작고한 국내 미술인들을 나열한 것으로, 기록이 드문 무명작가들이나 비창작 미술인들의 이력도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김 소장은 “밤하늘의 많은 별 중 1등성이 빛나 보이는 것은 2등성, 3등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미술사를 1등만 찾고 연구할 것이 아니라 2등, 3등의 자료도 찾고 연구 폭을 넓혀야 한다”며 미술계에 대한 애정과 미술연구의 열정을 드러냈다.

▲ 김달진미술연구소 김달진 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린 시절부터 수집에 남다른 취미가 있었던 김 소장이 처음 모은 것은 우표, 껌 상표, 담뱃갑 따위였다. 이후 ‘주부생활’ ‘여원’ 등 여성잡지의 컬러 화보를 모으다가 고3 때 전환점을 맞는다.

“1972년에 지금은 없어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근대미술 60년전(展)’이라는 전시를 봤는데, 1900~60년까지 우리나라 근대미술 60년을 망라한 전시였어요. 이때 전시를 보며 서양 모나리자나 피카소 화보를 모을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자료를 모아야겠다고 자각했습니다.”

이후 그는 미술 잡지 ‘월간 전시계’에서 3년여간 기자생활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을 거쳐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역임한다. 자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던 김 소장은 2001년 이후 연구소와 정보센터, 박물관 등을 개관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 월간지 ‘서울아트가이드’, 홈페이지 ‘달진닷컴(daljin.com)’ ‘달진북스’와 SNS 등을 통해 그가 하는 일을 공유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999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 받아 한국신지식인에 선정됐으며, 2013년에는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만든 인물로 중학교 도덕교과서(금성출판사)에 소개됐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수집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 지금의 ‘김달진’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

자료는 그 당시 수집하지 않으면 천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술자료박물관의 수많은 자료들은 중학교 때부터 40여 년간 전시회를 누빈 김 소장의 세월을 입증해준다.

김 소장은 과거 국립현대미술관 근무 때는 금요일마다 가방을 메고 신문회관, 인사동, 사간동 등 화랑가를 돌며 자료를 모아 ‘금요일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가방에 짓눌린 어깨에 문제가 생겨 2년 전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건강을 찾았지만 김 소장은 요즘 시름에 잠겨있다. 연구소 건물의 국가 지원이 내년 9월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모든 자료를 무료로 개방하고 오직 ‘서울아트가이드’ 광고비 수입으로 운영하는 상황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연구소 건물을 임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 소장은 “김달진미술연구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도 아니고, 무료 열람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가 가시적인 홍보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지식인프라에 지원을 해줘야 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앞으로 K-pop, K-art가 더 커가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독창성 있는 자료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며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을 반쪽인생이라고 말하는 김 소장. 그가 어려움 속에서도 자료를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회에서 작품은 한 번 모였다가 전시가 끝나면 흩어집니다. 결국 전시를 증명해주는 것은 자료입니다. 바로 도록, 팸플릿, 포스터, 티켓 등을 정리해서 미술역사의 기초 자료를 만들어 주는 거죠.”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이면 역사로 남는다’는 소신을 가진 김 소장에게서 깊은 사명감이 느껴졌다. 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첫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단, 자기 취향이나 만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는 미쳐야 해요. 마지막으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합니다. 절대 욕심내서 급하게 이루려 하지 말고 참을성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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