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참전언론인동우회 박기병(80) 회장은 춘천사범학교 3학년 재학 중 6.25가 발발해 참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6.25참전언론인동우회 박기병 회장

1950년 춘천사범학교 동기들과 입대
“춘천에도 전승기념관 건립해야 한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너희는 무엇인데. 그렇게 파라솔을 쓰고 희희낙락 하느냐’라고 생각했지.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지키려 했던 평화가 고작 이런 모습이었던가. ‘이 모습을 보려고 내가 그 고생을 했던가’ 하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 감성적인 20대 때였어.”

학도병으로 참전해 정식 포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대한언론인회 6.25참전언론인동우회 박기병(80) 회장은 아직도 당시 뇌리에 꽂혔던 인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를 서울 프레스센터 대한언론인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 휴전이 되기 직전이니까 1952년이군. 동료가 밀양 육군병원에 입원했다고 해서 출장 명령을 받고 찾아갔었어. (전방 전쟁터에서 있다가) 거리에 나와서 보니 너무나 한가한 게 정말 전장과 분위기가 달랐지. 거리에 거닐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전쟁의 개념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

전방에서는 죽이고 죽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반면 후방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너무도 상반된 분위기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감성적인 청년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파라솔(양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랑곳없이 웃고 떠들며 그늘을 만들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양산을 쓰기에 급급한 그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박 회장은 1950년 6월. 춘천사범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중 6.25가 발발해 학생복을 입은 채로 포병부대 포탄 운반을 도와주며 전쟁에 참가했다. 군번도 없이 무작정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 그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며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양구전투에 참전한 그는 인민군 연대병력의 포위로 탈출을 시도했고, 이후 포병부대 모집 소식을 듣고 춘천사범학교 동기들과 입대했다. 통신병이 됐다. 그는 4년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속을 뚫고 살아남았다.

그는 6.25와 같은 전쟁을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멸망한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6.25전쟁을 겪었으면 거기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고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는 6.25전승지(춘천‧낙동강‧인천)에 이를 기념하고 후대가 전쟁의 참상을 느낄 수 있도록 경각심을 갖게 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아직 기념관이 건립되지 못한 춘천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낙동강과 인천처럼 춘천에도 치열한 전승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기념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기병 회장은 군에서 제대한 후 대한통신 정치부 기자로 언론에 입문해 부산일보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제17대 한국기자협회장을 중임하고 대전MBC 상무, 강릉MBC와 춘천MBC 사장을 거쳐 케이블 TV 구로방송 사장, 강원도민방 사장 등 방송인으로 경륜을 쌓았다. 현재는 대한언론인회 이사와 참전언론인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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