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11월 카빌라 대통령의 재선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샤에서 수차례 열렸다. 데모 현장에서 붙잡힌 시위대. 당시 시위로 15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제공: 체체 콩고민주공화국 교민회장 제공)

체체 콩고민주공화국 교민회장 인터뷰

아프리카의 세계대전 ‘DR콩고분쟁’
2차 분쟁으로 사망자만 400만명
‘지하자원의 저주’ 아프리카 전쟁
주변국 이해관계 얽혀 해결 불투명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내 소원은 콩고공화국의 전쟁종식과 평화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 DR콩고)에서 카메라 기자로 활동하다 8년 전 한국에 온 체체(Tchetche Biwesa Kadibu, 41) 콩고공화국 교민회장이 내뱉는 ‘평화’는 깊이가 달랐다.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한국의 가장 좋은 점으로 ‘평화와 안전’을 꼽았다.

체체 회장은 일하는 틈틈이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콩고공화국의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중심에 있는 나라가 콩고민주공화국이다. 그는 “콩고공화국 정부는 권력의 사용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래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살인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 강대국들이 콩고공화국의 지하자원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정부와 결탁해 부패를 부추기고 있다”고 성토했다. 부패한 정권과 강대국의 결탁으로 빚어지는 이른바 ‘지하자원의 저주’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전쟁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원인이 되고 있다. 체체 회장에게 콩고 분쟁사와 현재 상황을 물었다.

▲ 체체 회장이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와 결탁해 지하자원을 헐값에 사들이고 있는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 강대국을 비난하고, 카빌라 대통령의 재선을 반대하는 시위를 2011년 11월 주한 벨기에 대사관 앞에서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 체체 콩고민주공화국 교민회장 제공)

- 콩고민주공화국은 어떤 나라인가.
난민 주요 발생지인 콩고민주공화국은 세계에서 12번째로 큰 국가다. 인구는 약 7500만 명으로 세계 19위다. 이웃 나라 콩고와 구분하기 위해 수도 킨샤샤의 이름을 따 킨샤샤 콩고 또는 DR콩고라 불린다. 콩고공화국 이전 이름은 자이르였다. 1996년 1차 내전 이후 17년 넘게 내전과 국제전을 치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암울한 나라 중 하나다. 250여 부족으로 이뤄졌으며, 1960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지하자원이 풍부한 지역인 카탕가주의 모이스 촘베가 카탕가주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란이 시작됐다.

- 콩고 분쟁사를 요약한다면.
1965년 참모총장이던 모부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다. 모부투는 콩고의 지하자원을 노리는 미국 등 강대국들과 결탁해 32년간 독재정권을 지속했다. 장기집권과 부패의 결과 1996~97년 1차 콩고내전이 발발했다. 이 내전은 반정부조직인 ADFL(콩고·자이르 해방민주세력연합)과 콩고 정부군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1997년 우간다와 앙고라의 지원을 받은 반정부군 카빌라가 집권했다. 그러나 카빌라도 모부투와 같은 독재 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카빌라가 집권을 도운 르완다 투치족을 몰아내자 르완다는 배신감에 반정부군과 연합해 제2차 콩고내전(1998~2003년)을 일으킨다. 내전 결과 아버지 카빌라 대통령은 암살되고, 아들 조제프 카빌라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2002년 12월 콩고공화국과 주변 5개국이 프리토리아 평화협정을 맺어 정전에 합의했으나 반군 M23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 콩고분쟁, 왜 아프리카의 세계대전인가.
아프리카 10여국이 관여된 콩고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세계대전으로 불린다. 2차 분쟁(1998~2003년)으로만 4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난민 2500만 명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외부인은 거의 없다. 국제사회가 콩고분쟁을 얼마나 외면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UN평화군이 콩고공화국에 주둔하면서, 외형적으로 유엔이 콩고 문제 해결에 나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없다. UN은 그간 콩고분쟁에 대해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UN에 아무런 희망도 걸고 있지 않다.

- 정부와 국제사회에 호소해봤나.
콩고공화국 국민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패한 정권과 대통령 재임에 반대하는 시위들을 반복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2011년 11월 28일 콩고공화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카빌라(Kabila) 당시 대통령을 포함해 총 11명의 후보가 선거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벨기에 등은 지하자원을 지속적으로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그들과 결탁한 카빌라가 대통령직을 지속하기 바랐다. 콩고공화국 국민들은 이런 강대국과 국제사회를 비난하며 카빌라를 더 이상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각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국에 있는 콩고공화국 교민들도 주한 벨기에 대사관 앞에서 같은 시기에 시위를 벌였다. 당시 수도 킨샤샤에서는 150여 명이 시위 도중 목숨을 잃었다.

- 아프리카 11개국 평화협정 후 상황은.
현재도 콩고공화국은 반군 M23의 활동으로 내전을 겪고 있다. M23은 르완다 소수부족 투치족 출신의 콩고공화국 장군 보스코 은타간다 장군이 이끄는 반군 세력이다. 이들이 정규군을 이탈해 살인과 강간 약탈을 저지르면서 정부군은 물론 UN평화군에도 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해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2013년 2월 아프리카 11개국이 콩고공화국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협정에 서명했지만, 여전히 M23은 북부 키부 지역에서 활동하며 정부군과 대치하고 있다.

길고 암울한 콩고공화국 분쟁사를 들려준 뒤 체체 회장은 잠시 여유를 보였다. 벌써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그는 “아리랑을 좋아하고 한식 중에선 닭볶음탕을 제일 좋아한다”며 웃었다. 50년 넘는 내란과 전쟁으로 ‘평화’는 꿈이 돼 버린 콩고공화국. 체체 회장은 ‘전쟁종식과 평화’가 누구보다 간절한 형제들을 위해 “한국인들이 어떻게 한국문화를 유지하고 공유하는지 배워서 고국에 돌아가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생각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평화의 모습인 듯했다.

체체 회장은 “전쟁 없는 평화가 아프리카는 물론 38선 넘어 북녘 땅에도 속히 도래하길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 2011년 11월 28일 당시 한국에 거주하는 콩고민주공화국교민들이 주한 벨기에 대사관 앞에서 카빌라 대통령의 재선을 반대하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제공: 체체 콩고민주공화국 교민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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