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명륜3가 유림회관에서 성균관 임시총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행사는 최근덕 전 관장의 측근들 퇴진을 촉구하며 현 체제를 반대하는 일부 성균관 유림들의 불참 속에 진행됐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개혁파, 장정폐지 후 새 정관으로 대대적 혁신 추진
집행부, 임시총회서 정관 획기적 개정 “언제든 대화”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한국 유림(유교)의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600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유교의 총본산이라 할 성균관의 수장이 법의 심판대에 올라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최근덕 전 성균관장이 국민의 혈세를 횡령하고 개인 권세를 이용해 13억 원이 넘는 돈을 유용한 이번 사태는 성균관 역사 이래 최대 스캔들이란 오명을 남겼다. 청렴의 상징인 성균관이 하루아침에 불법비리의 온상이 돼버린 조직을 추스르고 정상화를 위해 한국 유교계가 개혁과 쇄신을 외치고 있다.

성균관은 지난달 19일 대의원 임시총회에서 열고 어약 관장대행을 ‘성균관장’으로 추대하고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어약 관장은 최근 ‘유림조직의 대중화’ ‘유교이론의 현대화’ ‘선비정신의 실천화’라는 유교 현대화 3대 지표를 발표하고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서의 자부심 회복과 땅에 떨어진 윤리도덕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그의 뜻을 수용하고 따르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당시 임시총회에는 총회 정원 870여 명(장정 기준) 중 340여 명(위임장 포함)만 함께 했을 뿐 상당수의 유림단체가 불참했다. 참석자 중에서도 어약 관장체제를 다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날 임시총회는 한국 유교계의 현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성균관 초유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유교 종단 안팎에서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국비상전교협의회, 성균관유도회 등 개혁 세력들은 논란의 중심에 선 최근덕 전 관장이 16년 장기집권을 부른 ‘성균관 장정(章程)’에 대해 시급히 개정해야 할 악법으로 규정, 장정폐지를 촉구했다.

현 집행부는 개혁파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임시총회에서 기존 정관인 ‘장정’의 명칭을 ‘정관’으로 변경, 성균관장을 추대가 아닌 대의원 선출로 한다는 개정안을 안건으로 내 처리했다.

그러나 다수의 유림단체는 임시총회 결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유는 임시총회가 총회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정족수 미달)과 안건 내용이 자신들(개혁 세력)과 논의도 거치지 않고 집행부의 일방적인 의견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무효’를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뿐 아니라 지난달 말에는 유교 관련 학회와 대학교수 133명은 성균관 사태와 관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아울러 “한국의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중추적 기구인 성균관의 대대적 혁신은 엄중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강조하며 유교 개혁에 앞장서겠다고 피력했다.

박홍식 한국유교학회장도 “이번 사태로 성균관이 역사에 역행하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다”며 “성균관 정상화를 위해 유교인의 사명이라는 각오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어약 관장, 정관 개정으로 개혁 본격화… 성균관·유림 대화로 해결 절실
이에 성균관 측은 지난 임시총회에서 성균관 개혁과 정상화를 위한 의지를 드러냈으며 정관 개정으로 성균관장 선출 방식도 민주적으로 변경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어약 성균관장은 천지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우선 성균관 사태로 심려를 끼쳐 드린 전국 유림들과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고 죄송하다는 말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어 “저 자신은 차기 성균관장이 선출되기까지 3~6개월간 성균관장을 임시로 맡았을 뿐이다. 지난 임시총회에서 성균관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며 “성균관 관리행정과 사태를 수습하고 선거가 원활하게 합리적으로 진행되도록 대의원들이 관장직을 맡겨 준 것”이라고 밝히며 불출마 의사를 또다시 내비쳤다.

하지만 일부 개혁 세력들의 주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교 학회와 대학교수들의 대국민사과 성명에 대해 “많은 전교들(향교 책임자)이 이번 성명에 동참한 것으로 안다. 총무처에서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사실과 다르더라”며 “(전교들이 말하기를) 모임에 참석하고 이름을 쓰라고 해서 썼을 뿐 (사회법) 소송 등을 하라고 동참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라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혀 대학교수들이 여론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균관 사태를 불러일으킨 최근덕 전 관장과 현 집행부는 개혁의 주체가 아닌 개혁의 대상이라는 비판에 대해 “수십 년간 함께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임시총회를 통해 선을 긋고, 가장 논란이 된 관장 선출 방식 등을 개혁했다. 장정을 정관으로 바꾸며 개정안을 민주적으로 바꿨다”면서 “기존의 관장 추대위원회(위원 50~60명)를 통한 선출 방식에서 전국 대의원(전교, 유도회 등) 800~900명이 차기 관장을 뽑도록 획기적으로 개혁했다”고 일축했다. 이와 함께 선거 규정, 대표권 등 과거 문제가 된 정관을다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사회법으로도 사라진 ‘연좌제’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나는 선거도 출마하지 않고 관장이 뽑히면 나간다. 80세 중반 노구인데 교권 욕심이 전혀 없다”며 “개정한 정관을 자세히 본 사람들은 우리의 개혁의지를 인정하고 있다. 신임 관장이 새로운 인물들을 임명해 개혁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로(개혁파) 만나서 의논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것”이라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홍역을 치르는 성균관이 정상화를 위해선 현 집행부, 전국 향교와 유림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유림총연합 안명호 총재는 “유림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문제점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계속 나올 것이다. 최 전 관장 이전부터 성균관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며 “이제는 성균관과 향교, 유림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 누구나 인정하는 명분을 찾고 이번 사태를 원만히 잘 해결해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집행부가 차기 성균관장 선거와 유교 정상화를 위해 쇄신을 요구하는 개혁 세력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