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선생이 유학 시절 그리워했던 평양냉면

▲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1925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5년 시카고 한인들을 모아 놓고 “십 년 전에 이곳을 지나갈 때에 장 씨에게 냉면을 대접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와보니 참 반갑습니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1915년 이전에 이미 미국 시카고에도 평양냉면이 진출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28년 5월 1일 자 <별건곤> 제12, 13호에는 이정섭이란 작가가 프랑스 유학 생활하면서 가장 그리운 한국 음식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별건곤>에 ‘외국에 가서 생각나던 조선 것-조선의 달과 꽃, 음식으로는 김치, 갈비, 냉면도’라고 기록했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중에 제일 그리웠던 것은 조선의 달과 진달래꽃(杜鵑花)이었다… 동지섣달 추운 날에 백설(白雪)이 펄펄 흩날릴 때 온돌(溫突)에다 불을 뜨듯이 때고 3, 4 우인(友人)이 서로 앉아 갈비 구워 먹는 것이라든지 냉면(冷麵) 추렴을 하는 것도 퍽 그리웠다. 그리고 양식(洋食)을 먹은 뒤에는 언제든지 김치 생각이 퍽 간절했다. 김치야말로 외국의 어느 음식보다도 진품(珍品)이요. 명물(名物)일 것이다. 나의 그립던 것은 이 몇 가지라 하겠다.”

냉면 추렴을 한다는 것으로 봐서는 외식의 한 형태였을 것인데 그것이 평양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1920년대 말 이전에도 충분히 냉면은 전통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33년 7월 매일신보에 보도된 ‘신의주와 평양에서 냉면을 먹은 사람들이 중독현상을 보였다’는 기사와 1926년 ‘평양의 냉면 배달 노동자 16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는 기사 등을 보면 일제치하에서도 냉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평양의 옥류관에서 하루 평균 판매되는 냉면만 해도 1만여 그릇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청류관의 냉면도 유명하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