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도 20년이 더 지났으니까, 사회인치고 지방자치란 뜻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본연의 속 깊은 의미는 차치하고서라도 단순하게 용어상으로 보면 지방자치는 ‘지방’과 ‘자치’의 합성어로 구성되어 있다. 자치(自治)란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이니 그렇다면 지방자치는 ‘지방이 스스로 다스린다’는 뜻이 된다. 지방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다스린다는 지방자치의 본의미라면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어떤 사람들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학자들이나 자치주의자들은 여전히 형식만 지방자치일 뿐 중앙집권이고 관치(官治)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있다. 소위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말이다. 현재 지방자치에 몸담고 있는 자들도 그 말에 수긍을 한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관용 경북지사는 한 인터뷰에서 현재의 지방자치를 ‘3할 자치, 2할 자치’라 단정지우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현재의 지방자치가 형식적이네, 실제적이네 하는 논란을 짚어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단순한 내용보다는 정치‧행정적 또는 이론과 실제적인 제도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지방자치 본래의 뜻은 지방의 일은 그 지방주민 스스로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방의 일이란 지역의 문제, 지역의 행정, 지역의 정치 등을 가리키며,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자기의 일은 남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기 의사와 자기의 힘으로 독립적‧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지방자치란 ‘지방의 정치행정을 그 지방의 주민 또는 주민의 대표자를 통하여 자주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자치권의 핵심인 행정권‧입법권‧재정권‧조직권과 관련해서는 자주적이라야 한다.

자주적인 자치권을 생각하다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봄이 오면 뭐하노, 그쟈.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로 시작되는 가수 최백호의 노래다. 그 가사처럼 봄이 오고 꽃잎이 피어나도 개인이 갖게 될 희망이 없는 무망한 것이라면 의미 또한 없을 것인데, 현금의 지방자치가 딱히 그 모양새다. 아무리 주민의 대표자를 뽑아놓으면 무엇하나? 그 대표자가 주민들을 위한 주민복지와 지역개발을 할 사무적 기틀이 열악한데 말이다.

자주행정권과 자주조직권도 중앙정부가 정한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 한때 민선시장이 비서실 정원조차 늘릴 수 없다며 관치를 비난하기도 했다. 자주입법권인 조례 제정도 제약이 따른다. 지방자치법(제22조)에서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 다만,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내용도 처리가능한 일본의 조례제정권과 견주어볼 때에 우리의 지방자치는 한계가 크다.

자주재정권은 더 열악한 편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1.1%에 불과하다. 기초단체인 시구는 30%대, 군은 16.1%이고, 가장 낮은 전남 강진군의 경우는 7.3%이다. 자주재원의 근간인 지방세 수입으로 자치단체 직원들의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초단체가 전국 227개 단체 가운데 125개나 된다. 그러한 현실은 자주재정 입장에서 홀로서기하는 지방자치가 아니라 지방의 살림살이에 대한 목줄을 중앙정부가 쥐락펴락한다는 증거다.

그런 입장에 있으니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언급한 지방자치 신세타령은 그저 해보는 소리나 엄살이 아닌 것이다. 3할 자치론은 “지방의 사무 결정 권한을 중앙이 70%, 지방이 30% 갖고 있다”는 현실을 바로 보고 한 말일 테고, 2할 자치론은 우리나라의 조세 구조를 볼 때에 “국세가 80%, 지방세가 20%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다. 김 지사는 “여기에다 복지 수요는 확대되고, 국고 보조 사업 규모는 커지는데 국가 보조율은 낮아지고. 목이 졸리는 느낌이다”는 말은 무늬뿐인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관치나 중앙 위주의 집권이 아닌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권한과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말은 지금까지 한두 번 나온 말이 아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20년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말이지만 지금까지의 역대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현재 지자체 지원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과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몸담고 있을 때에 “갈수록 늘어나는 지방정부 부채, 중앙의 재정정책과 연관된 지방세수입의 격감, 중앙정부 기능의 지방이양 등 다양한 요인들이 지방재정의 위기를 키우고 있는 만큼, 중앙과 지방 간의 협의 하에 지방재정 안정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세월만 따져볼 때 이젠 성년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무늬만 지방자치일 뿐 재정 등 모든 컨트롤타워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어 지방자치를 제대로 운용해나갈 수 없다. 온전한 지방자치가 되려면 그 핵심인 행정권‧입법권‧재정권‧조직권에서 자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조세규모에서 국세 대 지방세 비중이 8대 2로 지방이 열악한 상태에서 지방자치는 중앙정부의 목줄달린 신세이므로 재정의 홀로서기가 시급하다. 현직 도지사의 말마따나 중앙은 비만증인데, 지방은 영양실조를 앓는다는 소위 ‘3할 자치, 2할 자치’는 부끄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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