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휴대폰을 손에 든 채 휴대폰이 없다면서 당황해 하는 엄마, 주차한 곳을 기억하지 못해서 넓은 주차장을 헤매고 다닌 엄마, 둘째 아이를 낳고 건망증을 호소하는 엄마의 모습을 최근 필자의 진료실에서 부쩍 많이 본다. 젊은 엄마들이 왜 이렇게 건망증을 많이 겪을까?

먼저 출산을 꼽을 수 있다. 건망증은 머릿속에 저장된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면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기억장애인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적어지면 집중력이 저하되어 건망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트로겐 수치는 출산 직전 최고로 올라갔다가 출산 직후 최저로 떨어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엄마들이 출산 직후 심각한 건망증을 경험하게 된다. 에스트로겐 수치 저하는 건망증뿐 아니라 산후우울증의 원인이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에스트로겐 수치는 일반적으로 출산 후 한 달 이내에 정상적으로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에스트로겐 수치가 회복되더라도 건망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데, 출산 후 1개월이 지나도록 건망증이 심하다면 다른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두 번째 원인은 수면부족이다. 육아로 인해 잠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우리 뇌는 잠을 자는 동안 하루의 경험과 정보를 재정리하게 되는데, 잠이 부족할 경우 새로운 기억의 생성과 유지에 필요한 뇌의 해마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다. 따라서 수면 시간이 짧거나 수면의 질이 낮다면 건망증이 심해질 뿐 아니라 집중력, 판단력, 감정제어 등에 문제가 생긴다.

세 번째 원인은 과부하 멀티태스킹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집중할 경우 다른 것들에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엄마는 온 신경과 관심을 육아에 집중하다보니 다른 일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 실제로 건망증은 아빠에 비해 엄마들이 더 많이 경험한다. 엄마들은 빨래, 청소, 설거지 등 수많은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할 뿐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왔는데, 여기에 육아라는 중요 과업이 추가되면서 기억을 담당하는 뇌 용량에 한계를 넘어 '깜빡깜빡'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30대부터 우리 몸의 세포들은 점점 퇴화하기 시작하면서 뇌신경 퇴화라는 기질적 요인으로 건망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즉 30대 엄마라면 기억력이 20대같지 않다는 뜻이다.

네 번째 원인은 육아 스트레스다. 건망증은 정서적, 심리적 요인과도 밀접하다. 출산과 육아로 불안증이나 우울증이 있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쪽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건망증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건망증이 심해지면 자신감을 상실하면서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반대로 산후우울증이나 육아우울증에 시달리다 건망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건망증이 심하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건망증은 순간적인 기억장애일 뿐 뇌나 지적 능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 건망증으로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건망증은 사소한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잠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는 등 뇌를 쉬게 하려고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증상이다.

건망증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다. 육아가 힘들더라도 엔도르핀 등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도록 아이가 주는 기쁨을 충분히 즐기고 항상 웃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하자. 이미지로 기억하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분명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주차를 어디에 했는지 외웠는데도 쉽게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모양은 어떻게 생기고 색깔은 어떤지, 무엇이 옆에 있는지 이미지화하여 기억하면 훨씬 기억해내기 쉽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관시켜 외우는 것도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는 좋은 방법이다. 운동과 독서도 시간 내어 하자. 아이와 함께 산보를 하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독서는 뇌 활동을 자극하는 좋은 수단이므로 소설, 잡지, 신문 등 관심분야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두뇌 훈련을 하자. 건망증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여서 건망증을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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