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엊그제 서울과 평양에서는 정전과 ‘승전’의 이벤트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 한국이 ‘잊혀진 전쟁’을 명예로운 전쟁으로 자리매김하는 성스러운 행사를 벌인 것과 달리 북한은 요란한 군사퍼레이드로 ‘빈약한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모대김을 연출했다. 6.25전쟁에서 사실상 승자는 없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우리 한국이 승자요, 북한은 패자임이 분명하다. 저들이 도발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은 전쟁이니 자유와 정의를 지켜낸 우리가 승자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27일 오전 10시의 김일성광장 군사퍼레이드는 예상보다 초라했다. 북한은 정전 60주년을 맞은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과 평양시 군중시위를 2시간여에 걸쳐 열었다. 북한이 정전 기념일에 맞춰 대규모 열병식을 한 것은 1993년 이후 20년 만이다. 김일성광장의 주석단에는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을 비롯해 각국 대표단이 자리했으며 관람석에는 북한 전역에서 평양으로 뽑혀온 6·25전쟁 참전 ‘노병’들이 전쟁 시기 북한군이 입었던 군복을 복원해 맞춰 입고 행사를 지켜봤다.

이날 열병식 주석단을 차지한 사람들이 입은 옷은 제각각이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평소 입었던 검은색 인민복을 입었고 바로 왼편의 리위안차오 부주석은 양복차림이었다. 김 제1위원장은 이번에 흰색의 원수 제복을 입고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으나 실제는 ‘그만의 옷’을 입고 나와 노동당 지배의 ‘자기 스타일’을 강조하였다.김 제1위원장의 오른쪽에 자리한 최룡해 군 총치국장과 장성택 대장은 행사용 군복인 흰색 예복을 입었고 박봉주 총리는 우리의 예비군에 해당하는 노농적위군 군복을 입고 등장했다. 북한 주요 인사들 사이사이에 자리한 외국 대표단들은 각자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특히 이날 김 제1위원장과 리위안차오 부주석은 종종 대화하는 모습이 조선중앙TV 화면에 잡혔는데 이는 북중친선을 유독 강조하려는 노동당 선전기관들의 의지로 풀이된다.열병 지휘관을 인민무력부장 장정남이 맡은 것도 특징적이었다.

보통 군령권자인 총참모장이 보고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번에는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이 열병식 지휘관으로 나섰다.‘항일무장투쟁’ 시기를 재현해 백마를 탄 기마부대가 가장 먼저 등장했고 그 뒤를 6·25전쟁에 참전했던 육·해·공군 부대와 여군들이 전쟁 당시 군복을 입고 행진했다. 보병부대의 행진이 끝나자 방공포와 다연장로켓, 자주포 등을 포함한 각종 포부대가 뒤를 이었고 낙하산 등을 착용한 군인들과 방사성 물질을 나타내는 표식이 그려진 가방을 멘 군인들이 트럭에 앉아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어 장갑차와 전차 행렬, 올해 3월 김정은 제1위원장이 훈련을 참관했던 무인타격기가 트럭에 실려 등장했고 이동식발사대 차량에 실린 스커드·노동·무수단·KN-08 등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KN-08 미사일은 지난해 4월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는 얼룩무늬였지만 이번에는 다른 미사일처럼 미사일 앞부분만 붉은색으로 표시되고 나머지 부분은 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아무튼 군사퍼레이드는 기대와 달리 초라해 보였다.

최룡해의 연설에서 핵무력·경제건설 병진노선은 강조되지 않았고, 김정은은 군복을 착용하지 않은데서 북한의 향후 행보가 어느 정도 감지되고 있다. 리위안차오 부주석은 김정은의 면전에서 다시금 비핵화를 강조하면서 북한의 강경노선에 쐐기를 박았다. 김정은은 9월 중순 베이징을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내적으로 이번 7.27이 김정은 체제 안착이라면, 국제적으로는 베이징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북한 리더의 자격요건이다. 이제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하기 행보도 변경될듯하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있을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오늘이다. 부디 7.27로 터닝포인트를 찍고 북한이 체제전환의 새로운 길을 걷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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