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연습할 장소만이라도 있었으면…”

▲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놀량사거리 한명순 예능보유자가 소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하응백 문학평론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이북 황해도에서 유행한 서도소리의 명맥을 이어온 故 김정연 선생의 수제자 한명순 보유자는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놀량사거리(선소리 산타령)’ 예능보유자다.

서도 ‘선소리 산타령’의 계보를 잇는 놀량사거리는 고도의 음악성과 대중 예술성을 겸비한 분야로 손꼽힌다. 두 옥타브의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으며, 소리가 박진감이 넘쳐 씩씩한 멋을 풍기며 흥을 돋우는 특징이 있다.

한명순 보유자는 어린 시절 김정연 선생의 눈에 띄어 운명처럼 소리와 평생 함께하게 됐다. 당시 한 씨는 서울 남산에서 열린 KBS 민요백일장에 참가해 ‘매화타령’을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이때 김정연 선생도 특별출연해 소리를 했는데, 한 씨를 눈여겨보았던 김정연 선생이 그에게 “너는 서도목을 타고났으니 내 집으로 들어와서 서도소리를 배우라”고 했던 것.

한 씨는 당장 고향 홍성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졸라 허락을 받았다. 어린 딸을 서울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을까마는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입 하나 더는 셈 치고 스승의 집에 가서 열심히 배우라는 뜻에서 한 씨의 부모는 상경을 허락했다.

한명순 보유자는 도제시스템 마지막 예능인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승의 집에서 그냥 소리를 배울 수만은 없었기에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기에 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는 “가출도 하고 선생님께 대들기도 했다”며 “하지만 선생님은 그때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셨고, 소리하는 자세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줬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이후 한 씨 자신이 소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임을 깨달았을 때 스승은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그는 “그때는 몰랐다. 철부지 같은 나를 늘 감싸준 선생님이 이해가 안 됐었다”며 “지금 돌아보면 선생님은 이미 평생 소리를 떠날 수 없는 내 운명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아니다. 비지정문화재라 할 수 있는 황해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국가 지원이 전혀 없다. 소리에만 집중해서 연습할 장소도 없다”며 “한여름에 강당 같은 곳을 빌려서 연습하고 있지만, 근처 주택가에서 민원이 들어올까 싶어 창문을 꼭꼭 닫은 채로 연습한다”고 말했다. 또 여름에 녹음할 때에는 그나마 더위를 식혀줄 선풍기조차 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힘겹게 소리를 이어가야 하니 다른 중요무형문화재에 비해 전수생도 많지 않다.

한 씨는 “우리 이북5도 무형문화재들도 전수관 등의 환경이 조성돼 스승의 뜻을 잇고, 소중한 무형유산을 후대까지 널리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편 지난 6월 12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올해 김정연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자들(이춘목, 이문주, 한명순)과 그의 문하생들이 함께 모여 ‘서도소리 대축전’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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