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존경하는 대의원 동지 여러분, 앞으로 우리 민주당의 역사는 2013년 5월 4일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뉠 것입니다. 장산곶매는 자기보다 몸집이 두 배나 큰 독수리와 싸움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둥지를 부수고 날아오른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장산곶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변화의 폭풍 속으로 몸을 던져 당의 운명을 건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지난 <5.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당선된 김한길 대표의 ‘수락 연설문’ 가운데 일부이다.

김한길 대표의 ‘수락 연설문’을 다시 읽어 본 것은 그의 초심을 재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무슨 생각으로 당 대표에 출마했으며, 당선 후 일성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요즘 김한길 대표의 ‘생각’을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고 또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은 것이 그 배경인 셈이다. 김한길 대표체제가 들어선 지 벌써 두 달하고 보름이나 됐다. 그 사이 민주당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장산곶매는커녕 그의 존재감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그야말로 김한길 대표가 사면초가에 빠진 느낌이다.

친노의 귀환

김한길 대표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이 깊은 수렁에 빠진 상태에서 선택한 마지막 대안이었다. ‘민주당 비대위’가 꾸려지고 그 내부의 치열한 논의 끝에 탄생한 당 혁신의 비전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막강한 대표 권한을 부여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물론 모든 조건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밖에서는 안보위협이 가중되면서 북한 변수가 시선을 끌었으며, 내부적으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을 놓고 지금 이 순간까지 정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어떤 쟁점 하나도 김한길 대표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최근 정국의 대치전선이 과거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대결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과 그 주변의 친노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던 민주당 지도부와 ‘선대위’가 직접 당사자이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논란도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과 친노 주류세력이 직접 당사자이다. 그렇다 보니 ‘뜨거운 감자’를 요리하는 인사들이 대부분 친노 인사들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게다가 박근혜정부를 공세적으로 비판하는 인사들도 대부분 친노 인사들이다. 마치 제1야당인 민주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어느새 친노 인사들로 채워진 것이다. ‘친노의 귀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김한길 대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존재감조차 없어 보인다. 그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제1야당 대표가 칼끝 대치국면에서 존재감조차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김한길 대표체제는 좌초한 것과 다름 아니다. 장산곶매처럼 둥지를 부수고 비상한 것이 아니라 채 날기도 전에 외풍으로 인해 한 쪽 날개가 꺾여버린 것이다. 치명적이다. 그리고 다시 비상할 동력을 찾기도 어려워 보인다. 지금의 소용돌이가 단박에 그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조만간 정리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전열을 재정비한 친노의 벽은 태산처럼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김한길 대표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진 셈이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답답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는 상처로 얼룩진 한 쪽 날개라도 제대로 손질해서 날 수 있는 데까지는 날아야 한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온 몸의 중심부터 바로 잡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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