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진짜 사나이’란 TV 프로가 인기다. 연예인들이 군대에 가서 병사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병영체험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향수를, 군대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힘들고 고달픈 가운데서도 웃음보가 터지거나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프로임에 틀림없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게 백 프로 리얼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챈다. 실제 군대에서 훈련을 하면서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을 보이거나 동료들과 노닥거리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들다. 리얼 다큐가 아닌 오락 프로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정상적인 병사들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그걸 타박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쇼니까.

다만 평생 죽을 때까지 군대 이야기를 해대는 대한민국 남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 프로 하나를 찍기 위해 병사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하는 짠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우리들은 안다. 군대 시절 높은 분이 오신다는 전갈만 떨어져도 마당 쓸고 길 닦고 풀 뽑으며 난리를 치고 혹시라도 높은 분에게 지적이라도 당하면 “깨졌다”며 곡소리가 났다는 것을.

헬리콥터가 뜨고 수십 대의 전차와 트럭 장비들이 동원된 대규모 훈련이라면 실제 상황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숱한 보고와 도상 훈련, 검열이 이뤄졌을 것이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던 병사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고, 병사들은 죽을 고생을 했겠지만 정작 TV 화면에는 연예인들이 희희낙락하는 모습만 가득할 뿐이다.

대한민국 남자치고 군대 이야기에 귀를 솔깃하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휴가 나온 병사는 그런다. 남이야 듣든 말든, 하품을 하든 말든, 입에 거품을 물고 제 군대 생활 이야기를 한다. 제대를 하고나서도 군대 이야기와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를 해 댄다. 자꾸 해 댄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해 대고, 듣기 싫다 해도 해 댄다.

저 혼자 꿈을 꾸며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훈련소에서 박박 기거나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뒹굴며 악을 쓰다 소리를 지르다 제 풀에 놀라 잠을 깬다. 깨서는, 아이고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심지어 어찌어찌 하여 간신히 제대를 하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영장이 또 나왔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냐며 머리를 쥐어뜯어 보지만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그래, 꿈속에서 두 번이나 군대에 다녀오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 십 번도 넘게 같은 짓을 반복한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들어주는 것도 아닌 짓을, 저 혼자 끙끙거리며 그러는 것이다.

수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이 그러고 산다. 그러니 군대 이야기 해주는 프로에 눈길이 안 갈 리가 없다. ‘우정의 무대’가 현역병뿐 아니라 이미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것도 그렇고, ‘메기’ 등 ‘동작 그만’에 등장했던 개그맨들이 모조리 스타 대접을 받게 된 것도 그렇다. ‘푸른 거탑’이라는 프로도 수많은 김 병장, 이 병장들이 박수를 짝짝 쳐 주었기에 히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나 놓고 보니 웃고 그러지, 사실 군대 있을 때는 다들 죽을 고생을 한다. TV 프로에서 과장과 허풍을 섞어 보여주어도 지난 일이니, 즐겁게 봐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 순간이 되면, 아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 하며 한탄을 하게 된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가 있는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누겠다고 다짐했던 사나이가, 난 이제 더 이상 사나이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때가 오고 만다. 세월은, 사나이들을 마냥 ‘진짜 사나이’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세월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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