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국은 전남 화순군 청풍면 어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5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는 한한국을 낙태하기 위해 양잿물까지 마셨다. 하지만 큰 인물이 될 것이니 절대 낙태시키지 말라는 태몽으로 겨우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한한국은 호남의 유명한 고수였던 아버지와 동네에서 장구를 잘 쳐 악단장이란 별명을 가진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명필(名筆)도 되고 가수도 됐던 게 아닐까.

제발 제발 뚝 떨어지지 않고! 오매, 징한 것! 차라리 에미가 죽으랴?”

보리가 팰 무렵이 되자 점점 불러오는 배를 안고 한한국의 어머니는 남몰래 애를 지울 궁리에 몸부림쳤다. 끼니거리도 어려운 집안에 큰아들인 광섭을 비롯한 43녀에 막내인 한국까지 들어섰으니, 아무리 60년대의 시골이라고 해도 그런 집의 자식풍년은 동네에서 흉이 잡힐 정도였다.

하이고, 광섭이네는 자다가 이불만 들썩해도 애가 들어스나비어잉!”

남 보기 부끄러웠던 어머니는 임신한 배를 쥐어뜯어 보기도 하고 저수지 둑에서 굴러 보기도 하고,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으나 야속한 배는 점점 함지박만 하게 솟아오르기만 했다.

에잇, 내가 죽나 애가 떨어지나 한번 해보자!”

하다하다 못해 어머니는 부엌 살강 밑에 보관하던 양잿물을 꺼내 한 사발이나 들이켰다. 순간 입안과 목구멍에 불길이 붙은 듯하여 두멍에 길어다놓은 샘물을 정신없이 퍼마셨다. 결국 여러 날 동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의생 집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 이 노릇을 어찌 할꼬?”

한한국의 어머니는 이런 소동을 벌이고서도 그를 낳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있는 자식들만으로도 넘치는 데다 금방 돌아올 보릿고개도 지긋지긋했으며 주위 사람들도 그만 낳으라고 부추겼던 것이다. 바로 이때 어머니는 때늦은 태몽이라고나 할까, 아주 이상스런 꿈을 꾸었다.

음메~ 나를 떼지 마세요! 나를 살려 주세요! 음메~!”

누런 황소 한 마리가 다가들면서 고개를 내두르고 소리쳐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꿈에는 어머니가 붉은 자운영이 만발한 들녘의 넓은 논에서 꽃을 따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큰 뱀이 나타나 그녀의 몸을 순식간에 감아버렸다. 너무 놀란 어머니가 동네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외치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꿈에는 조상님이 나타나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가진 애는 크게 될 인물이다. 절대 함부로 떼지 마라. 스스로 클 아이다. 다만 낳는 장소가 중요하니 아무데서나 낳지 마라!”

연속 삼일이나 이상한 꿈을 꾸게 되자 어머니는 낙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낳자! 애를 떼기 전에 내가 먼저 죽겠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海心 ●제작년도: 2010 ●작품크기: 가로 95㎝×세로 1m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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