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시설이냐, 역사의 유물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랑엔 국경이 없다는 말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쓰는 말이다. 이런 때나 쓰일 줄 알았던 말이 최근 서울시 안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김종필)는 감리교단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도시계획 취소소송에서 동대문교회의 철거를 포함한 서울시의 성곽복원사업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동대문교회(서기종 목사)는 117년 전통을 자랑하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 소속으로 감리교 역사상 세 번째로 설립된 교회로 사회적, 민족적으로도 그 역사가 깊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던 동대문교회가 철거 위기에 놓인 이유는 서울시가 2007년부터 추진한 도심재창조종합계획 중 서울성곽복원계획에 따라 이전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동대문교회의 역사

 

▲117년의 역사를 지닌 동대문교회. ⓒ뉴스천지

 

1890년 10월 의사이자 선교사인 스크랜튼(W. B. Scranton) 박사에 의해 시작된 동대문교회는 1892년 12월 미 선교부 총무인 볼드윈(Mrs. L.B. Baldwin) 부인의 기부금으로 새 예배실(볼드윈 채플)을 짓고 첫 예배를 드렸다. 한국감리교회 중에서 최초로 예배실 내에서 남녀가 함께 예배들 드리게 된 것이다.

또한 같은 해 ‘볼드윈 매일여학교’가 시작돼 여성교육과 교육선교를 담당했다. 1893년 8월에는 제2대 담임자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H.B. Hulbert) 선교사가 부임하는 등 한국사회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왔다.

동대문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힘을 실어줬고, 일제강점기 때 국권회복 운동을 이끌었던 교회로 유명하며, 3.1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손정도 목사가 담임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교육사업 등 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1970년대에는 평화시장 근로자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등 감리교회의 정통성을 이어온 교회다.

600년 서울성곽 vs 117년 동대문교회

 

▲서울성곽ⓒ뉴스천지

 

 

▲재판부는 노후한 교회 건물이 성곽 일부를 점유한 데다 교회 건물 및 주차장이 성곽을 가리고 있어 철거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뉴스천지

 

이렇듯 민족의 역사와 함께 이어져 온 117년 전통의 동대문교회가 그 오랜 역사를 뒤로 하고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 성곽 복원사업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성곽역사공원 조성사업을 고시하면서 철거 문제로 갈등을 빚어 오다 이전비용에 대한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117년의 역사가 스민 교회를 누가 지키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서울 시민 모두가 쉴 수 있는 공원 조성과 600년 역사를 지닌 서울성곽 복원에 교회 또한 한 발 물러섰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이 교회가 공원 부지로 편입하려는 결정이 부당하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도시계획시설 결정 취소 소송을 내면서다.

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 전통을 이어가길 바란다면 해당 교회나 감리교 본부나 이전비용을 두고 법정 싸움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민족과 역사를 함께해 온 것이 비단 서울성곽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함께 만들어오고, 그 자리에 서서 역사를 목격한 말없는 목격자들이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600년과 117년. 얼마나 많은 세월을 지내왔는가만이 그 존재가치를 재는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했는가 또한 중요한 척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성곽 복원사업으로 철거 위기에 몰린 동대문교회 옆은 벌써 복원사업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뉴스천지

 

물론 역사적 가치가 큰 서울성곽을 복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재판부가 “서울성곽은 축조된 지 600년 이상 된 것으로 범국가적이고 큰 역사적 가치가 있는데, 노후한 교회 건물이 성곽 일부를 점유한 데다 교회 건물 및 주차장이 성곽을 가리고 있어 성곽의 경관을 회복하고 복원되지 않은 성곽 부분을 되살릴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판시했는지도 모른다.

공익성 면에서 본다면 서울 시민을 위한 공원 조성이 당연 큰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동대문교회의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이 뒷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러한 사실을 재판부 또한 인식하고 있어서인지 “동대문교회의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에 대해서는 공원을 조성할 때 교회터 위치에 흔적 표시 등을 남기는 방법으로 보존이 가능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가 결정할 일 아니다. 결정은 동대문교회에”

동대문교회가 패소한 사실에 대해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의 한 관계자는 “패소에 관해 직접 들은 적은 없다”며 “동대문교회가 철거되고 이전되는 것에 대한 사항은 전적으로 동대문교회 측에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동대문교회의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침해되는 사익이 크다.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며 소송까지 냈던 처음치고는 안일한 태도가 아닌가 해서 안타까움마저 든다.

교회 이전에 대한 결정권은 순전히 동대문교회 자체에 있는 것은 맞다. 그렇지만 감리교의 역사와 전통이 있고, 민족적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교회인 만큼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마다 그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보존가치가 있다고 결정할 수는 없다.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둘 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했다는 것에 그 의미를 둬야 할 것이다.

너무 공익성만 따지게 되면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는 역사에 묻히고 말 것이요, 국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역사의 유물을 하나 둘 철거해 간다면 이 역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송두리째 저 허공에 날리는 셈이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동대문운동장 성벽 복원 조감도. ⓒ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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