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동양 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 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 안중근의 옥중 유묵에서 -
조선을 넘어 한‧청‧일의 진정한 공생을 통해 동양의 평화를 이루기 원했던 안중근. 그의 평화사상은 침략자인 일본인들의 마음조차 녹이는 힘을 갖고 있었다.
특히 당시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저격을 받은 타나카 세이지로(田中淸次郞) 만주 철도 이사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안중근이지만 오히려 그를 더 높게 평가했다. 그는 후년에 안도우 도요로쿠(安藤豊錄)에게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은 유감스럽게도 안중근이다”라고 고백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살인범으로 검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안중근을 심문한 미조부치 다카오 검찰관은 안중근이 조목조목 지적한 이토 히로부미의 15가지 죄상을 듣고는 ‘동양의 의사’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진술을 듣고 있으니 당신이야말로 동양의 의사로다. 의사가 사형에 처형 되는 법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간수로 있었던 찌바 토오시지는 안중근과 끈끈한 우정을 맺기도 했다. 정의감 있고, 정직했던 24살의 간수 찌바 토오시지. 그는 안중근의 옥살이를 보며 감동했다. 안중근은 감옥의 모든 규정을 지키며 기도하는 모범수였고, 심문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논어, 중용, 성경을 읽었다. 반듯하고 신념이 강한 안중근을 대하며 그의 마음도 녹아내렸다. 그는 안중근이 동양평화를 집필할 수 있도록 붓과 종이를 넣어주기도 했다.
사형집행 당일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가 다시 찾아오는 날, 한ㆍ일 간의 우정이 다시 회복되는 날, 다시 태어나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휘호를 그에게 남겼다.
이 유필은 아내 키츠요와 친척에게 전해져 70여 년 후 한국에 반환됐다.
1981년 찌바 토오시지가 잠들어 있는 미야자와현 센타이시(宮城県仙台市) 대림사(大林寺)에 안중근과 찌바 토오시지의 우정이 담긴 휘호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을 옮긴 현창비(顯彰碑)가 건립됐다. 1990년 일본 외교포럼지 9월호에는 ‘옥중에서 탄생한 일ㆍ한 우호의 동반자, 비운의 독립 운동가 안중근과 간수 찌바 토오시지의 우정 이야기’에 관한 기사가 게재됐다.
찌바 토오시지의 조카인 미우라 쿠니코는 안중근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생전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안중근은 단순한 살인범이 아닌 민족 독립전쟁을 위해 자신의 몸을 투신한 의사였으며, 사형되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인물이자 아까운 청년이었다며 조선이 독립되는 날에는 반드시 민족의 영웅으로서 재평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안중근을 재판했던 히라이시 우지토 재판장도 안중근의 인품과 언행에 사로잡혔다.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재판을 했지만 안중근처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당시 법원검찰관이었던 야스오카 세이시로도 안중근이 남긴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를 소중히 여겨 후대에 유산으로 남겼다. 딸 우에노 토시코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전쟁을 겪으면서도 잃어버리지 않고 70여 년 동안 휘호를 간직했다. 이후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고, 현재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보관 중이다.
‘근대 일본의 정치가’를 저술한 작가 오카요시타케(岡義式)는 하얼빈의 저격에 대해 “하얼빈 역 앞에서 울린 안중근의 총성이야 말로 같은 아시아인의 분노의 올바른 상징이었다”고 평가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은 침략국의 군인과 검찰‧재판장을 감동하게 했다. 결국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사로잡아 굴복시킨 것. 오늘 ‘평화’를 갈망하는 지구촌이 이 ‘동양평화사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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