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7일 판문점 통일각에선 무박 2일간에 걸쳐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이 열렸다. 이는 개성공단 잠정폐쇄 결정 95일만의 일이다. 일단 개성공단 재가동에 남북은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개성공단을 살려두는 데 성공했으며, 북측의 그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무튼 우리 기업이 그토록 소원하던 완제품과 원부자재 반출수용 등 우리 측 요구안을 상당수 북측이 수용했다는 점이 괄목할 만한 내용이다.

물론 우리가 핵심적으로 요구했던 사태재발방지 대책에 관해선 다음 10일 열리는 2차 회담 의제로 유보된 데는 아쉬운 점으로 남으나 유연성을 살린 현실적인 회담이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반면 10일 열릴 예정인 2차 실무회담의 주요의제들은 개성공단 사태에 대한 원론적 책임공방과 함께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의 실효성과 남북대화를 바라는 북측의 전략적 입장을 엿볼 수 있는 탐색전으로 이어지면서 의외로 회담이 장기화 될 공산이 크다.

남과 북은 우리의 문제를 우리의 지혜로 풀 수 있는 기회를 모처럼 자주적으로 확보했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선 안 된다.

이제 말하고자 함은 오늘날의 한반도의 문제를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있었는가를 한번 생각하고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주변국과의 협조라는 명분하에 언제나 의존적 자세로 임해 왔던 우리의 외교력을 반성해 볼 때는 아닌가 생각해 보며, 그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여진 우리의 문화가 되어 우리를 다스려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지나온 역사 속에서 오늘의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깨닫는 기회로 삼아볼 필요가 있을 것도 같다.

19세기 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정치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열강들의 세력다툼, 당시 중국과 일본은 천진조약(1885)으로 세력균형이 형성됐으며, ‘조선이 러시아 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는 요지의 ‘조․러 밀약설’을 계기로 해 러시아가 한반도로의 남진을 추진하려 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에 의해 ‘거문도 점령사건(1885)’이 발생해 한반도에서는 러․일 간에도 자동적으로 세력균형이 형성된다. 결과적으로 중․일․러․영 4개국 간에는 한반도에서 서로 눈치만 보며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2중의 세력균형이 장기간 형성돼 가는 동시에 미국은 미온적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다가 일본이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축출해 냄으로써 대한제국은 을사늑약(1905)을 통해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사실상 일본의 속국이 되고 만다.

당시 우리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해 가는 과정에서 보인 신․구(新․舊)세력의 내분과 부실하고 허약했던 외교력이 외세의 눈에 약점이 되고 빌미가 되어 일본에 의해 주권을 상실당하는 수난을 겪게 됐다.

구한말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 할 때 일본은 1910년 경술국치 이전 1905년에 왜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부터 박탈하는 수순을 밟았을까. 바로 여기에 우리의 무지하고 우매했던 자화상이 있었던 것이다. 1885년 러시아가 남진을 하자 영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즉시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이 때 조선은 중심을 잃고 외려 한반도에 마수를 뻗친 열강들의 도움을 얻으려 허둥대는 모습을 일본은 지켜봤으며, 그 외에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주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외세에 의존하려 하던 조선의 민족성을 일본은 간파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고, 사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4개월 전인 1905년 7월 일본 가쓰라 총리는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와 밀약(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이미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할 것에 협조를 얻어내고, 나아가 을사늑약과 한일합방까지 미국의 적극지지를 얻어낸다. 이 밀약과 포츠머스조약과 제2차 영․일 동맹을 계기로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을 세계열강들로부터 인정받기에 이른다.

오늘에 와서 우리가 분단된 것도 우리의 뜻이 아니요 외세의 뜻이다. 우리는 지금 그 외세와 하나 되어 통일을 계획하고 협조를 구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다. 외교력을 통해 주변국들과 화해와 평화의 무드를 조성해 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외세의 협조를 얻어 통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은 진정한 통일의 뜻이 있어 보이지 않으며, 다만 정권유지 차원과 안보차원에서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결국 통일은 당사자 간의 문제요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지나간 역사는 오늘의 새 역사를 써 가는데 분명히 거울과 경계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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