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지금까지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의심사례 394건에 대해 개인별 가습기살균제 관련성 평가를 위한 조사를 1일부터 시작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 처벌 및 피해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뉴시스)

첫 사망자 발생 2년여 만에 정식 대응
“피해구제법안·예산 속히 마련·진행돼야”

[천지일보=김성희 기자] “3년 가까이 기다렸는데, 이제라도 피해조사를 시작한다니 한시름 놨어요. 보상까지 빨리 진행되길 바랄 뿐이에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11년 4월이다. 당시 의료기관의 신고에 따라 임산부 7명과 남성 1명 등 8명에 대한 역학 조사기 이뤄졌다.

같은 해 8월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손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된다는 보건복지부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 자제와 판매 중단‧회수 권고령이 떨어졌으며, 11월에는 독성이 들어 있음을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2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조사와 이에 따른 구제활동에는 진척이 없었다. 또 정부의 대응이 늦어짐에 따라 공식적으로 접수되는 피해사례의 규모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지난 4월 21일 발표한 바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건수는 374건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는 116명에 달한다. 이후에도 피해신고는 이어져 2주 만에 22건(사망 9명, 환자 13명)이 추가됐다.

이런 상황에도 국회에서는 ‘근거 법이 없고, 정부 내 소관부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구제를 위한 추경예산마저 삭감돼 구제를 기다리던 피해자들은 이중고를 겪었다.

130여 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 관한 피해사례에 대해 정부가 2년 2개월여 만에 조사에 나섰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지금까지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의심사례 394건에 대해 개인별 가습기살균제 관련성 평가를 위한 조사를 1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에 질병관리본부는 ‘폐손상 조사위원회’에서 제시한 조사방법에 따라 이번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개인별 의무기록 확인과 임상검사(폐CT, 폐기능검사 등), 가습기살균제 사용력 확인 등의 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는 전문 의료진 등에 의한 개인별 검토 및 판정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조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주관하고, 임상검사는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시행한다.

또한 조사단은 환자의 집을 직접 방문해 집안 환경 구조, 유해 요인, 가습기 살균제 사용 증거 등을 살피고 가족 구성원 설문 조사도 진행한다. 조사위원회는 환자들에게 진료기록 등을 요청했으며, 이르면 10월경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2011년 정부 발표 이후 곧바로 이 조사가 시작됐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졌다. 그동안 상황이 많이 변해 조사가 문제없이 진행될지, 또 결과가 제대로 나올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최 소장은 “국회가 약속했던 6월 임시국회에서 구제법이 통과돼 피해가 인정된 분들은 피해구제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9월 정기 국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전에라도 구제법을 제정하고 행정부에서는 예산을 마련해 피해 구제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 대표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리면서 마음 졸였지만, 이제라도 조사에 나선다는 소식에 천만다행”이라며 “2년 가까이 끌어 온 사안인 만큼 빨리 조사가 진행돼 나온 결과를 근거로 예산을 확보하는 등 정부에서 조속히 움직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강 대표는 “이번 조사 대상 피해자들은 기존에 피해사례를 접수한 경우”라며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피해자들이 사례를 접수해 구제받을 수 있도록 모든 창구를 열어두고 후속조치를 마련해 한 사람도 배제되거나 누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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