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공휴일 지정·정전 60년 기념, 세계평화작가 한한국 일대기

그때부터 한한국은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되어 쟁반에 술병과 안주를 받쳐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유흥업소에 오는 각양각색의 손님들과 출연 가수들을 보며 그는 인생이 얼마나 요지경인가 실감하기도 했다. 훗날 그가 가수로 데뷔한 것도 이때의 경험이 밑바탕 된 것이다. 그러나 평생 웨이터 노릇만 하며 살 수는 없었다. 한한국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확실한 미래를 찾고자 끊임없이 고민했다.

‘언제까지나 이런 삶을 살 수는 없다. 하루라도 빨리 평생 가야 할 나의 길을 찾아야 해!’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세계화 바람이 불어왔다. 군대를 제대하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던 한한국은 ‘누에는 뽕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서예학원에 취직해 다시 붓을 잡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붓글씨였다. 그곳에서 그는 서예가로서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우리나라가 세계화된다면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몰려올 텐데, 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낄 것은 무엇일까?’

오랜 숙고 끝에 한한국은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적인 문제에 그 해답이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것을 찾다 보니 십자가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1㎝ 염원이 담긴 세계에서 가장 큰 ‘손으로 쓴 한글십자가’가 있다면 세계인의 관심거리가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성경은 인류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하지 않는가?

한한국은 바로 십자가 작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십자가에 성경을 담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50㎝ 한지에 연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명심보감의 명귀들을 썼던 것이다.

‘가만! 십자가에 명심보감은 마치 양복에 고무신 신은 것처럼 어울리지가 않네…….” 그제야 성경 생각이 났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십자가 안에 적어 넣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 이게 뭐야? 글씨도 크기가 맞지 않고 가로줄과 세로줄도 삐뚤삐뚤하고. 참 엉망이네.’

생각다 못해 바둑판 위에 한지를 깔아 써보기도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끝없는 시행착오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한한국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수천 번의 글씨 쓰기를 거듭하고 거듭한 끝에야 마침내 제대로 된 1㎝ 한글 붓글씨를 완성하게 된 것이다.

“윤 시인, 십자가의 크기를 1m 정도로 하면 어떨까요?”

작품 비용 때문에 한한국이 십자가 크기를 좀 줄여서 말했다.

“네? 1m라고요? 그게 누구 눈에 띄기나 하겠어요?”

한한국·이은집 공저

▲ ●작품명: 희망대한민국(원형백자, 국회헌정기념관 영구소장 전시 중) ●제작년도: 2011년 ●작품크기: 가로:73㎝×세로: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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