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테라피 카페 ‘행랑’

▲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티테라피 카페 ‘행랑’에 한방차를 마시러 온 손님이 앉아 있다. 손님의 차 주문을 받고 준비하고 있는 직원과 오유미 매니저. 카페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향방차. 향방차는 박하향이 나서 마셨을 때 시원한 느낌이 든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자가진단표로 자신에게 맞는 한방차 선택 가능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작은 경고에 관심 가져야”

[천지일보=김민지 기자]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북촌길 쪽으로 끝까지 걷다 보면 티테라피 카페 ‘행랑’을 발견하게 된다.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의 일부를 개조해 만든 이 곳에서는 여느 카페와는 달리 전통 한방차를 즐길 수 있다.

‘행랑’은 본래 사대부가의 대문간에 붙어 있는 노비나 하인이 거주하는 방을 이르는 말인데, 손님의 취향과 몸 상태에 맞는 차를 만들어 올리겠다는 의미를 담아 카페 이름도 이같이 붙였다.

고즈넉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문을 들어서니 달달하고 구수한 향기가 가득했다. 한방이라는 말 때문에 독한 한약냄새가 진동하리라는 생각과는 사뭇 다른 기분 좋은 향기에 마음이 편해졌다. 카페 곳곳에는 다양한 한약재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 행랑에서는 손님들에게 메뉴판과 함께 자가진단표를 내어준다. 총 22가지의 피라미드식 질문으로 구성된 진단표를 따라가며 답하다 보면 4가지 색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메뉴판도 차의 종류마다 색깔이 표시돼 있어 자신에게 맞는 차를 선택하기 쉽다.

한방차 개발을 처음 시작한 이상재 교수는 2년간 서울 마포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다. 한의원 일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자신이 좀 더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약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쓰다’ ‘먹기 힘들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과연 그럴까? 그가 한의원 약장의 200여 가지 약재를 하나하나 끓여 맛을 본 결과 쓴 맛을 내는 재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오히려 약재가 가진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리면 훌륭한 차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잘나가는’ 한의원을 과감히 그만 두고 티테라피 연구를 시작했고 2010년 안국동에 카페 행랑을 열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몸에 좋은 차이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줄로만 생각했고, 히트를 칠거라 믿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지만 현실에 부딪히며 얻은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티테라피가 존재할 수 있었다.

티테라피의 궁극적인 목적은 세계 속에 한국의 전통차를 알리는 데 있다. 이 교수는 “‘일본 차’ 하면 다완에 거품을 내어 마시는 말차나 증제차인 센차를 떠올리고 ‘중국 차’ 하면 자스민차나 보이차를 떠올린다”며 “일본과 중국의 차 문화에 비해 우리나라 전통차는 떠오르는 이미지나 개념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우리 전통차는 ‘테라피’라는 개념을 지니고 가야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티테라피를 대한민국 차 문화의 대표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기자, 온경차, 건위차, 보신차, 향통차, 감비차 등 현재 판매 중인 메뉴 중 12가지는 그가 직접 개발한 수제차다. 한의원에서 실제 사용하는 한약재 중 맛과 향이 뛰어난 재료들을 선별해 만들었다.

현재 그는 더 많은 연구를 위해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카페 운영 당시에는 차 만드는 데만 열중했었다면, 지금은 ‘차를 왜 마셔야 할까’라는 근본적 의미를 찾는 일과 전통차 연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카페는 그를 대신해 한방차 연구를 위해 함께 동고동락한 직원들이 책임지고 있다. 행랑에서 만난 오유미(30, 여) 매니저에 의하면 그는 독단적이거나 고집스럽지 않았다. 언제나 직원들과 함께 의논하고 시음해보며 한방차 개발에 힘써 왔다는 것이다.

▲ 이상재 교수의 저서 <한의사의 다방> ⓒ천지일보(뉴스천지)

오 매니저는 “몸이 호소하는 작은 증상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잠깐의 여유를 가지고 ‘몸아 고마워’ 하면서 감사의 마음으로 차를 마신다면 몸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미병(未病)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병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가령 피곤해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든지, 잦은 두통에 시달린다든지, 손발이 차거나 땀이 많은 증상도 이에 해당된다. 이런 증상들은 병원에 가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과 함께 신경성‧스트레스성이라는 결론으로 돌아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방차를 마신다고 몸이 갑자기 나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중요한 것은 티테라피를 통해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작은 경고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의사의 다방>을 통해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어디에 좋다는 차를 별 생각 없이 꿀꺽 마신다면 그건 그냥 물”이라면서 “차에 담긴 이야기와 내 몸에 대한 이야기가 만나 비로소 치유의 힘이 있는 차 한 잔이 된다”고 말했다.

행랑에서 단연 인기몰이 중인 메뉴는 향방차다. 향이 통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한방에서 향은 뭉친 기운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향방차는 박하, 곽향, 감초를 우려내 만든 차로 스트레스, 어깨 결림, 눈 피로, 두통 등에 좋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시달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는 필수품이 돼버린 듯한 증상들이다.

모든 미병에 크게 공감하고 있던 ‘피곤한 현대인’인 기자에게 매니저는 향방차를 내줬다. 투명한 찻잔 옆에는 작은 모래시계가 놓여 있어 3분의 시간이 지나면 향긋한 차를 즐길 수 있다. 간단한 간식거리도 제공된다. 바삭바삭한 율무과자와 상큼 달달한 구기자, 씹는 맛이 일품인 말린 대추가 심심한 입을 달래준다. 향방차의 시원한 향 때문에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차가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감초의 달달함도 더해진다. 맛과 향도 일품이었지만 무엇보다 차 한 잔이 주는 여유가 기분을 좋게 한다.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감비차다. 율무와 메밀이 몸 속 노폐물을 빼주기 때문에 부종, 다이어트, 변비 등에 도움이 된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매실차나 오미자차가 도움이 된다. 한의학에서는 신맛이 기가 땀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단맛은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작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소화를 촉진시킬 뿐 아니라 식욕을 돋우는 효과도 있다.

▲ 카페 외부에 있는 족욕시설. ⓒ천지일보(뉴스천지)

카페 외부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운치를 더한다. 차를 마시는 손님들은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족욕은 단순히 발을 씻는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뜻한 것은 위로 가고 찬 것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로 얼굴에 따뜻한 기운이 몰리고 발에 찬 기운이 몰리는데, 얼굴에 트러블이 나거나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증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에 건강한 몸은 위로 몰리는 따뜻한 기운은 아래로 끌어내려 손발을 데우고, 아래로 몰리는 차가운 기운을 위로 끌어올려 얼굴을 식혀주는데, 족욕이 이를 도와준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차는 단순히 잎, 뿌리, 과실 따위를 우려낸 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에게 호감을 표현할 때,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마음을 나눌 때, 잠시 쉬어갈 때 등 일상 속에서 쉽게 ‘차 한 잔 하자’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차는 곧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고 정(情)을 담아 전하는 선물이다.

하루쯤은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향긋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행랑에서의 ‘여유’를 선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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