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임진왜란 때 전세가 뒤집어지기 시작한 건 유성룡의 면천법(免賤法) 때문이었다. 왜놈 병사를 죽여 목을 베어 오면 천민신분을 면해준다고 하자 노비 등 ‘상놈’들이 전쟁터로 나선 것이다. 대를 이어 짐승처럼 살아야 했던 천민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아갔던 것은 애국심이 아니라 천민 신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 때문이었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을 더욱 분발케 하는 것 중 하나가 군 면제다. 국가대표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럽고 그만큼 더 멋진 경기로 보답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도 있겠지만, 군 면제 역시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보상이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군 면제 때문에 이을 악다물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선수도 있었고,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동메달을 딴 뒤 라커룸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틀어놓고 얼싸안고 울었다고 한다. 박종우 선수의 메달 박탈 위기 소식이 들렸을 때에도 군 면제가 어떻게 되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사람들은 이왕이면 그들이 애국심이나 열정 같은 순수한 가치들 때문에 열심히 싸웠다고 말해 주길 바라지만, 솔직히 그런 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대가 없는 순수한 행위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요구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그래서 그런 행위를 한 사람이 칭송받는 것이다.

희한하게도 역대 대통령들 상당수는 군 면제를 받았거나 장군 출신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졸병들 신세를 살피고 위해줄 리 만무하다.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했다.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한다. 면제 받은 자들은 겪어보지 못해 알 리 없고, 별들은 졸(卒)을 ‘졸’로 볼 뿐이다. 육군 상병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 때 그나마 졸병들 월급도 제법 오르고 복무기간도 줄었다.

수많은 현역병들이 내 자식은 군대에 보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 뺄 수 있으면 빼고, 안 되면 단기 복무나 좀 더 편하고 안전한 후방에 보내고 싶어 한다. 세월이 흘러 훈련소로 뛰어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 때는 병사였던 아버지가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대개는 그렇다.

군대 가는 것보다 군대 안 가는 걸 더 자랑스러워한다. 조선시대에 양반들은 군역을 면제받았고 상민들은 손자를 본 늙은이들도 군대에 가야 했고, 부역과 세금에 허리가 휘었다. 지도층이 어려울 때 앞장선다는 노블리제 오블리주 같은 건 없었다. 그런 의식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해서, 군대에서 축구 안 해 본 인간이 더 으스댄다.

귀한 자식들을 싸게 데려다 쓰니, 졸(卒)들을 더욱 더 ‘졸’로 보는지도 모른다. 축구라도 기가 막히게 잘 하거나 든든한 배경이 있다면 모를까, 이도저도 아닌 청년들은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하고, 그런 그들은 그래서 억울하다 여긴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방식이 문제다. 공무원 시험에 가산점을 준다는 군가산점 제도에 여성들이 발끈한다. 현실성 없다는 주장도 있다. 공무원 시험 보는 사람이 고작 1%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연히 논쟁만 불러일으켜 진 빼지 말고 군대 갔다 온 사람이면 누구나 혜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는 여성도 군복무를 의무화 한다는 뉴스가 떴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싶은 남자들도 많다. 군가산점 논쟁이 아니어도 그런 마음,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그런 소리 대놓고 하지 않는다.

‘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만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그런 사나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보상은 해주어야 한다. 국방의 의무도 공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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