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기증 ‘만인산’ 특별전

참된 고을 수령 위한 기념물
백성이 제작… 당시 풍속 담겨
기증한 946점 중 60점 공개

▲ 1879년에 이만기가 초산부 사람들에게 받은 만인산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만인산. 산 이름이 아니다. 만인의 이름을 수놓은 ‘일산(日傘)’의 의미로 ‘수산(繡傘)’이라고도 하며, 수놓아진 고을 사람들의 이름 수에 따라 ‘천인산’ 또는 ‘만인산’이라 한다.

여기서 일산은 일종의 햇빛 가리개로 쓰였다. 또 행렬의 위상을 나타내는 의장(儀仗)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에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높이 받들고자 일산에 수령의 공적을 새기고, 그 아래에 이를 바치는 사람들의 이름을 수놓아 선물하면서부터 ‘만인산’은 공직자의 표상이 됐다. 즉 만인산은 조선 후기 어진 공직자를 위한 백성의 선물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진성 이씨 집안의 이동영(李東寧) 씨로부터 기증받은 조상의 유품을 통해 당시 미풍양속과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26일부터 9월 23일까지 ‘이동영 기증 만인산 특별전’을 연다.
전시 유물 자료들은 박물관의 전시·연구 자료로 활용되길 바라며 이동영 씨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576건 946점 가운데 집안을 상징하는 ‘만인산’ ‘홍패’ ‘어사화’ 등 대표적인 60여 점을 선정한 것이다.

▲ 만인산을 받게 된 이력을 적은 초산실기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퇴계 후손이자 1878년 6월 25일 평안도 초산부사로 부임한 이만기는 이듬해 11월 ‘만인산’을 받았다. 만인산은 일반적으로 떠나가는 어진 수령을 위해 백성이 제작해 선물한 기념물이다.

초산부사 이만기의 만인산은 그가 1년 더 유임해줄 것을 바라며 2091명의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이 만인산을 통해 그가 퇴계 후손으로서 청렴결백하고 공평하게 정사를 펼친 어진 공직자의 표상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고을 백성은 초산부사 이만기가 떠난 후에도 그를 잊지 못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그의 영정을 걸어뒀다고 하나 이를 부끄럽게 여긴 이만기는 생사당을 철거하는 등 겸양의 덕을 보이기도 했다.

이 만인산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있던 안동 의인마을 초산댁 벽장 다락에서 나왔다.

기증자 이동영 씨는 어렸을 때 만인산을 갖고 놀기도 했으나 12세 때 서울로 떠난 이후 집안을 상징하는 조상의 유품이기 때문에 사랑채 벽장 안 다락에 보관했다고 한다. 다른 유물은 많이 도난당했지만, 만인산은 다락에 있어서 다행히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게 됐다.

박물관은 이외에도 <초산실기> <초산부사 해유문서> 등 만인산과 연계된 고문서 자료를 추가로 기증받아 생생한 제작 경위 등도 파악했다.

앞서 이동영 씨는 “나와 같이 이러한 조상의 유품을 가지고 있다면 혼자 장롱 같은 곳에 넣어두지 말고, 여러 사람이 많이 공유하고 소중한 연구 자료로 보탬이 되도록 기증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기증자와의 유대 속에서 기증 자료 연구를 통한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나오길 바란다”며 “어진 공직자의 표상인 만인산의 의미처럼 앞으로 진정한 공직자를 위해 국민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이름을 새겨놓을 제2의 만인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 만인산의 윗면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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