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

김동리(1913~1995)

나무에 새잎 펴나면
그때부터 내 눈길 그리 쏠린다.
그래도 내 시간인 일요일 오전은
감나무 아래서
대추나무 바라보는 것으로
오롯이 다 바쳐지고 만다.
이렇게 한 평생 다 바친대도
세상에 왔던 내 보람
헛되지 않았다고 눈감을밖에

[시평]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젊은 시절 시를 썼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젊은 시절 이후 소설에 전념하다가, 또 만년에 시를 써 발표를 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보람’은 만년의 작품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이제 막 새잎이 돋아나는 대추나무나 바라보는 것으로 일요일 오전을 다 바치듯, 그렇듯 한평생을 다 바친다고 해도, 세상에 왔던 보람 헛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부하며, 눈 감을 수 있다는 노소설가의 그 마음.
삶이란, 삶의 ‘보람’이란 어쩌면 이렇듯 크지 않은 곳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너무나 큰 것만을 바라보고 숨 가쁘게 달려온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진정한 우리 삶의 보람을 놓쳐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시는 작디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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