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일은 정부의 당연한 의무다. 그래서 정부는 장·단기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는바, 당초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어낸다면 좋은 정책이다. 정부가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관성을 지녀야 하고, 실제적인 행동경로(行動經路)가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여론에 밀려 대충 결정해버린다면 정책 실패로 이어질 것이고, 많은 후유증과 함께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게 마련인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월례 토론회에서 박근혜정부의 경제 운영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발제자의 말을 빌어 한 언론지가 전한 평가 서두에 오른 한 마디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박근혜정부가 복지 증진, 경제 민주화, 고용 창출 중 어디에 역점을 두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방향성이 모호함을 빗대고 있는 것이다. 취임 4개월이 가까워오는 새 정부의 경제운용을 두고 위기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고 주요 정책 목표가 상충된다는 지적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박근혜정부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대선 공약을 중심으로 안보, 경제, 복지 분야 등을 비롯한 각종 국가 현안과 관련하여 여러 대안들을 활발히 계획하고 있다. 그 많은 정책들이 계획과 집행 과정에서 정책의 오류나 위험성 없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지금 일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사회 갈등을 빚고 이해관계 계층 간 불만이 나오고 있음은 정책 결정이 온전히 진전되지 않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정책이란 정부가 설정한 공공문제나 공익을 위한 목표에 관한 장·단기적인 행동 방안이다. 앞서 말했거니와 하나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흠결이 없는 정책이 되어야 함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특히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핵심 사안으로 밝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4~20만 원을 주겠다”고 한 기초연금 방안은 여러 가지 문제로 정책 수립 초기부터 벽에 부딪쳐 있고, 영·유아 보육료지원이나 양육수당도 대폭 늘어나는 지방비 부담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마다 복지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볼멘 목소리다.

다른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겠지만 한 나라의 복지정책은 태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 계층에 두루 시혜가 가고, 한번 결정되면 지속적으로 재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항구적인 정책으로서 완전무결한 정책이 돼야 한다. 그러함에도 복지정책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래도 넉넉하지 못한 재원 대책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증세를 하지 않고 불요불급한 기존 예산을 줄여서 사용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보면, 예산 짜내기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복지정책에 투입되는 예산이 전액 국비로 집행되지 않고 지자체가 일정 비율을 부담한다는 데 있다. 복지사업 중 1000억 원 이상인 사업이 기초생활보장, 영유아보육료 지원, 양육수당, 기초연금 등 11개 사업에 이른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재정에서 중앙정부가 만든 복지정책에 지방비를 부담해야 하니 지자체는 복지 재원 마련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그 가운데 대선 공약에서 촉발된 기초노령연금은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연동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으로 결정되어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게 되는 등 문제점으로 인해 국민 불신을 키우고 말았다. 이에 복지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복지부에서는 지난 3월 중순께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설치했고, 위원회에서 단일안을 7월초까지 만들어오면 이를 정리하여 올 국회에서 통과시켜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국민행복연금위가 그동안 5차 회의를 개최하고도 결론 없이 논란만 확산되는 실정이다. 게다가 제시된 후보 안이 당초 5가지에서 더 늘어났다. 시안(試案)에서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는 방안, 인수위 방안인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연동해 차등 지급하는 방안, 국민연금 소득 재분배 부분과 합산해 최대 20만 원씩 지급하는 방안 등 무려 7가지 대안들이 논의돼 기초연금제도에 관한 초점을 더 흐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설령 논의안이 잘 정리가 돼서 복지부가 정부 입법안을 확정하더라도 다시 국회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부 입법안이 어떤 형태로 변할지 알 수 없다. 수혜 대상자를 소득 하위 70%로 하여 월 14∼20만 원 지급하는 방안을 시행한다고 해도 이번 정부 임기 동안 40조 5000억 원이 들어가는데 6조 원의 예산이 모자라게 된다. 또한 차기 정부에서는 84조 원, 차차기 정부는 125조 원의 재정을 필요로 하니 기초연금이 이번 정부에서만 지급하고 끝낼 사안이 아니지 않는가.

어떤 경우든 국민은 더 많은 복지를 원하므로 수혜자 입장에서 보면 국가복지론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지속적인 시행이 관건인 국가의 복지정책은 현 정부뿐만 아니라 차기 정부와도 연계된 문제이니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리보다 재정 형편이 더 나은 선진 외국에서도 복지국가론은 재정적인 압박으로 인해 한물 간 사안이다. 그러한 불확실성 조짐의 재정 여건 하에서 공짜심리를 유발케 하는 과도한 복지정책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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