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없다는 청년에 ‘무자본 인수’ 권유

▲ 김 씨가 5월까지 운영하던 경기도 지역 세븐일레븐 매장의 현재 모습(왼쪽). 각종 비용이 0원으로 수정된 계약서. ⓒ천지일보(뉴스천지)

자본금 없다는 청년에 ‘무자본 인수’ 권유
남은건 정신병·분노… “롯데, 무릎 꿇고 사과해야”

[천지일보=김지연 기자] 이달 15일은 정산금이 나오는 날이었다. 지난 한 달간 세븐일레븐 점포를 운영한 결과를 받는 날이다.

그러나 김민경(31, 여) 씨는 16일 새벽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 총 70알의 약을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죽는 게 억울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5월 정산 결과도 마이너스라는 사실에 어쩔 줄 모르는 심정이 돼 버렸다. 롯데가 지난 5개월간 자신에게 한 일을 죽음으로라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당장 아르바이트생 월급과 대부업체 이자를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 사태가 해결은 될 수 있나?” 막막함이 엄습했다. 김 씨는 작년 12월 24일부터 올해 5월 31일까지 경기도 일산에서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했다.

◆6번째 점주 사망 사례 될 뻔
약을 먹은 김 씨를 발견한 건 남자친구 전남우(가명) 씨였다. 다행히 심각한 상태가 아닌 것 같아 안정을 취하게 한 후 병원으로 옮겼다.

중환자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와 심박측정기를 매달고 10시간가량이 흘렀다. 약 성분은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정신적인 불안으로 진단됐다.

수면제 70알이 자살시도인 만큼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병원 측은 판단했다. 폐쇄병동에 1달가량 입원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병원비와 여러 여건을 고려해 각서를 쓴 뒤 퇴원했다. 정신병력이 전혀 없었던 김 씨에게 6개월 만에 나타난 충격적인 변화다.

남자친구 전 씨는 “(여자친구가) 30살 평생 정신과 근처에 가본 적이 없다. 몸도 건강했는데. 4월 초부터 수면장애와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돈 없는데… “다 면제해줄게, 한번 해봐요”
0원, 0원, 0원.
김 씨가 보여준 계약서는 가맹점가입비, 운영보증금 등 모든 조항이 ‘0원’으로 돼 있었다. 계약기간도 통상 몇 년인데 비해 김 씨의 계약서는 ‘3개월’이다.

점포 운영을 권유받은 건 아르바이트를 하던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들르면서다.

점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영업팀장은 김 씨를 보더니 ‘빈 점포가 났는데 운영해보라’고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돈이 없다고 했더니 “다 제해주겠다. 나쁜 기회 아니지 않나. 3개월만 해보라”고 했다.

평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도 내 가게 한 번 갖고 싶다’ 생각했던 김 씨는 흔한 기회가 아니라는 마음에 계약서를 쓰고 31살의 점주가 됐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경력과 실제 점주로서의 운영은 그 차이가 컸다. 게다가 김 씨는 ‘교육비’까지 면제된 조건이어서 본사의 점주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미숙함과 실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본사 FC(점포 영업담당자)의 도움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김 씨는 “무자본으로 들어오다 보니 직영점 알바생 부리듯 해도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면서 “5개월 동안 FC가 두 번이나 바뀌었고 정작 그 3명의 FC도 무심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일상이었다”고 억울한 심정을 토했다.

◆女점주에 CCTV 없이 장사하라?
작년 12월 24일 영업을 시작한 김 씨는 점포에 CCTV를 설치해 달라고 FC에게 요청했다. 비용 60만 원 중 50%를 부담해야 한다고 해서 그리 하겠다고 했다. 새벽 2시경부터는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인데다가 여자 점주가 운영을 하다 보니 야간 근무 시에는 CCTV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네, 기사분이 곧 설치해 드릴 겁니다”라고 대답한 FC는 5월 31일 해지 시점까지 CCTV를 달아주지 않았다.

매대 교체도 끊임없이 요구했지만 5월 31일 해지 때까지 실행되지 않은 부분이다. 김 씨는 처음 인수했을 당시 낙후돼 보였던 점포를 개선하고 싶었다. 이미지를 바꾸고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네, 해드릴게요”라는 FC의 매대 교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FC들의 ‘말 바꾸기’는 참기 힘든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CCTV를 달아주겠다고 했던 FC는 “정식계약을 해야 달아준다”고 나중에 말을 바꿨다. ‘정식계약’이란 3개월간의 임시운영이 아니라 여타 점주들처럼 투자금을 마련해 계약하는 것을 뜻한다.

김 씨는 “무자본 운영이었지만 하루 18시간씩 매장에 상주하면서 일했다. 정식계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CCTV조차 달아주지 않는다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도 본사는 정식계약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며 본사의 행태를 강하게 비난했다.

실제로 운영 중 도난카드 결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매장에 출동했지만 CCTV 화면이 없어 범인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김 씨가 지난달 31일부로 인계한 매장은 현재 다른 사람이 운영 중이며, CCTV 설치와 매대 교환이 완료돼 있다.

▲ 진료기록. 편의점 운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 흔적이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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