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고조가 전국에서 일어나는 반란군을 토벌하기 위하여 자주 도성을 비우게 되었다. 그는 아무래도 관중이 불안하였다. 고조는 상국 소하의 행동을 의심하여 여러 번에 걸쳐 사자를 파견하여 소문을 염탐하게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소하는 계책으로 백성들의 논과 밭을 강제로 싼값에 마구 사들여 돈도 지불하지 않고 질질 끌었다. 그 때서야 고조는 안심을 하였다.
경포의 난을 평정하고 귀국한 고조는 백성들의 소장을 웃으면서 소하에게 모두 넘겨주며 본인이 잘 처리하고 백성들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소하는 이때다 싶어 고조에게 자신의 뜻을 말했다.
“장안에서는 농지가 매우 부족한 형편입니다. 그런데 상림의 어원(금원 또는 비원으로 새와 짐승을 놓아기르는 자연동물원)에는 광대한 땅이 놀고 있습니다. 이것을 백성들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농작물을 거둬들일 때 짚을 베지 말고 그대로 두게 하면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니 두루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고조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귀공은 상인들에게 뇌물이라도 받아먹은 것이 아니오? 내 정원을 내놓으라니?”
그렇게 말하고 소하를 옥리에게 넘기고 말았다.
며칠이 지났다. 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위위(시종무관)가 고조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소하가 무슨 중죄가 있기에 별안간 투옥을 하셨는지요?” 그러자 고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진나라의 대신이었던 이사는 좋은 일은 모두 군주의 덕으로 돌리고 나쁜 일은 모두 자기 탓이라고 떠맡았다고 들었는데, 이 소하란 자는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내 정원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래서 잡아넣었다.” 이에 왕이가 말했다.
“폐하의 말씀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재상으로서 백성에게 보탬이 될 만한 일을 건의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상인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었다고 의심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소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폐하께서 몇 해 동안 전쟁터에 나가 계실 때에도, 그리고 폐하께서 진희와 경포의 반란에 친정을 하셨을 때에도 줄곧 관중을 책임을 다해 지켰습니다. 만일 소하가 그럴 생각을 품었더라면 옛날에 관중을 손에 넣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회조차 생각지 않았던 그가 이제 와서 장사치들의 뇌물 따위에 한눈을 팔겠습니까? 소하를 의심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고조는 왕이의 간언에 몹시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날 중으로 소하를 석방해 주었다. 감옥에서 나온 소하는 이제 늙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가 착한 위인이라서 고조를 원망할 줄도 모르고 사죄를 했다. 그러자 고조가 말했다.
“그대는 백성을 위해 건의했는데 짐은 허락하지 않았소. 어차피 짐은 걸이나 추와 같은 폭군이며 그대는 명재상이오. 그대를 투옥한 것도 짐이 밝지 못함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나 보오.”
소하는 오래 전부터 조삼과 사이가 나빴다.
고조가 죽고 효혜제가 황제가 되었을 때였다. 소하가 병석에 누웠을 때 효혜제는 친히 그를 문병하고 물었다. “상국의 후임자로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오?” 소하가 대답했다. “신하의 일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바로 왕이십니다.”
그러자 효혜제가 물었다. “조삼은 어떻겠소?” 소하가 머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폐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신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소하는 논밭이나 집을 장만할 경우에도 좋다고 하는 자리는 반드시 피했으며 건물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자손들 가운데 머리가 좋은 녀석은 내 겸손함을 본받겠지. 그 대신 바보 같은 자손이 대를 잇더라도 이런 보잘것없는 집이나 논밭이라면 권력자에게 빼앗기지 않고 넘길 수는 있을 것이다.”
소하는 한나라 효혜제 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문종후란 시호가 내려졌다. 세월이 흘러 자손 중에 죄를 범하여 신분을 빼앗기는 자가 생겨 4대로 가문이 멸망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황제가 널리 손을 써서 그의 혈통을 찾아내어 영지 찬후를 계승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