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장기법(尖裝技法) 개발한 도예가 윤주철 작가

▲ 첨장기법(尖裝技法) 개발한 도예가 윤주철 작가 ⓒ천지일보(뉴스천지)

윤 작가의 차를 타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에 보니, 차가 없이는 찾아가기에 좀 어려웠겠구나 싶었다. 더욱이 자타공인 길치의 대명사인 기자라면 분명 헤매도 한참을 헤맸을 것 같다. 작업실에 들어오자마자 작가는 찻물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그동안 작업실에 있는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았다. 도자기라고 하면 미끄러질 듯 매끄러운 면이 전부인 줄 알았던 기자에게 윤 작가의 작품은 말 그대로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전통적 귀얄기법의 독자적 변형

도예가의 작업실이라고 하면 으레 물레나 가마를 떠올리게 된다. 윤 작가의 작업실은 그런 정형화된 생각을 파괴한다. 흔히 볼 수 있는 물레도, 가마도 없다. 외려 무슨 주물공장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신기한 듯 작업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는 기자에게 윤 작가가 다가와 작품의 공정 과정에 대해 설명해준다.

먼저는 석고와 물레를 이용해 기물을 제작하고 반 건조된 기물에 붓으로 흙물을 바른다. 그렇게 흙물을 반복적으로 약20회 정도 바르고 비닐을 이용해 밀봉한 후에 12시간 정도를 보관한다. 그런 다음 돌기부분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그 방향을 정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흙물을 바른다. 원하는 색상의 안료를 이용해 또 다시 50~100회 정도를 바른 후, 1차소성(900도)과 2차소성(1250도)을 거치면 작품이 완성된다.

▲ 첨장기법으로 만든 도자기 (사진제공: 윤주철 작가)


작가의 설명을 들어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매끈해 보이는 도자 위에 흙물을 여러 번 덧바르는 것으로 돌기가 생겨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작가에게 돌기가 생성되는 원리에 대해 물었다.

“석고는 마르면 수분을 흡수하는 특징이 있어요. 이 과정에서 기면에 흙 입자들이 달라붙게 되는 거죠. 그렇게 성형이 된 도자 위에 흙물을 바르면 수분이 맺히게 돼요. 도자가 반 건조된 상태에서 흙물을 바르는 것이기 때문에 수분이 응축되면서 맺히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죠. 흙물의 농도에 따라 돌기가 크게도, 작게도 생기게 되는 거죠. 원하는 두께의 돌기가 나올 때까지 흙물을 반복해서 바르면 되는 겁니다.”

생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하나. 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자기 그릇을 만져보면 간혹 티끌처럼 오톨도톨하게 만져지는 게 있는데 작가는 외려 돌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청자와 백자와 같이 표면이 매끈한 도자기에 익숙했던 기자에게 표면이 가시돌기처럼 뾰족뾰족한 윤 작가의 도자기는 독특함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복어가시 같기도 한 무수한 돌기들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띠며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그의 작품이 어떻게 보면 ‘바다의 보석’으로 불리는 산호의 한 종류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처음 보는 기법이었다. 작가는 이 기법을 ‘첨장기법(尖裝技法)’이라고 부른다.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에 스스로가 붙인 이름이다.

“사실 이 기법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전통 귀얄기법을 제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죠. 전통의 재해석이라고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무슨 기법인지 질문할 때마다 ‘전통의 귀얄기법에서 착안해 흙물을 덧바르고~’라며 길게 설명을 하다보니 사실 좀 힘들더라구요(웃음). 일일이 기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뾰족할 첨(尖), 꾸밀 장(裝)’을 써서 ‘첨장기법’이라고 명명(命名)했죠.”

▲ 첨장기법으로 만든 도자기 (사진제공: 윤주철 작가)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현 시대의 문화적 요구와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동시에 버무릴 수 있는 능력. 이는 그의 전통의 현대적 해석을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다. 현대 한국 도자의 색깔 역시‘전통’ 1990년대 후반, 작가는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권 작가들과 교류전을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외국 작가들과의 대화 도중 “한국 도자의 특징과 문화적 색채”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고유의 청자나 백자는 이미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것이기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죠. 그들이 물었던 것은 현대 한국 도자에 대한 것이었어요. 답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았죠. 그 후 그들이 제게 던졌던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도예를 그만둬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했죠.”

작가는 현대 도자의 한국적인 색깔을 찾기 위해 2년 정도를 쉬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작가는 청자와 백자를 시작으로 한국 도자의 역사를 훑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분청사기의 귀얄기법이었다. 현대 한국 도자의 색깔 또한 결국 전통이었다. 전통이 없는 새로움은 없다. 전통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전통.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백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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