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긴장 완화 등 구체적인 의제 제시
회담 수용 불투명… 한중 회담 지켜볼 듯
[천지일보=명승일·임문식 기자] 북한이 16일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 남북 당국 회담이 무산된 지 닷새 만에 ‘비핵화’까지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의에 북한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중대 담화에서 “조미(북미) 당국 사이에 고위급 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대변인은 “조미 당국 사이의 고위급 회담에서는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문제를 포함해 쌍방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의제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회담 장소와 시일은 미국에 일임했다.
북한이 특히 이번 제안에서 비핵화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변인은 “우리의 비핵화는 남조선을 포함한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우리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완전히 종식할 것을 목표로 내세운 가장 철저한 비핵화”라고 규정했다.
더불어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의 당당한 지위는 그 누가 인정해주든 말든 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비핵화가 실현되고 외부의 핵위협이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유지될 것”이라며 “미국은 대화 국면을 열기 위해 우리더러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먼저 보이라고 떠들기 전에 우리에 대한 핵위협과 공갈을 그만두고 제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도발부터 중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전제 조건 없이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제안을 두고 북한이 27일부터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을 겨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중 정상회담에 이어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할 경우 북한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이 한·미·중 3각 공조를 느슨하게 하기 위해 북미 대화를 꺼냈다는 해석이다.
또한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대화하겠다’고 언급한 데 대한 후속조치라는 풀이가 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회담에 선뜻 응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앞서 ‘선(先) 비핵화’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이 북한의 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고,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위기의식 때문에 널뛰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방문했던 최룡해 특사가 핵보유 지위 요구가 통하기 어렵다는 점을 느끼고 왔을 것”이라며 “미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의지 표명도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적어도 핵 문제에서만큼은 어느 정도 타협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선 대미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점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