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동요의 나라로 떠나자 (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동요의 나라로 떠나자 (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 세월 흘러 다시 불러도 생각나는 그 노래 ‘동요’
▲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도’라는 섬에 가면 동요 가사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동요 ‘고향의 봄’을 그려놓은 벽화 ⓒ천지일보(뉴스천지)

▶ (상) 편에 이어서

◆‘동요의 아버지’ 윤석중 선생

푸르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또한 5월은 어린이날이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불렀을 ‘어린이날 노래’에 ‘5월은 어린이날’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은 이날만 되면 목청이 터져라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곤 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정말이지 5월만 되면 어린 우리들만의 세상인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 5월은 가족 모두의 달이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어린이날 노래’는 그야말로 어린이들을 왕자처럼, 공주처럼 만들어준 일등공신이었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할 것 같은 이 노래는 동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윤석중 선생의 시에 윤극영 선생이 곡을 붙여 탄생한 동요다.

수많은 동요를 만든 윤석중 선생은 그 자라온 환경 탓에 어린 시절을 외톨박이처럼 지냈다고 한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모의 손에 자란 윤석중 선생은 위로 많던 형제를 다 잃었다. 이런 그의 환경 탓에 윤석중 선생은 “어머니는 왜 나만 남기고 돌아가셨을까, 형이랑 누나랑 많았다는데 왜들 오래 못 살고 일찍 세상을 떠났을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등의 의문을 갖게 됐고,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찰은 곧 문학으로 향하는 물꼬를 트게 만들었다.

▲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도’라는 섬에 가면 동요 가사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동요 ‘고향의 봄’을 그려놓은 벽화 ⓒ천지일보(뉴스천지)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선생은 초등학교에서 일본말을 배워야 하고, 일본노래를 배워야 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선생은 일본 노래 ‘봄이 왔네(春が来た)’를 배우며 “우리나라에도 버젓이 봄이 있는데 일본말인 하르(봄春의 일본말)가 다 뭐람”하는 생각이 들어 배울 때마다 정이 떨어졌다고 한다. 선생은 결국 “따뜻한 봄이 오니 울긋불긋 꽃봉오리, 파릇파릇 풀잎사귀”로 시작되는 ‘봄’을 쓰게 됐다. 후에 선생은 ‘개벽사’에 드나들면서 소파 방정환 선생과 함께 일하게 됐고, 어린이를 위한 잡지의 발행과 글짓기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해방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인 ‘주간 소학생’을 창간하고 ‘어린이날 노래’를 지었다. 1951년 11월 11일에는 ‘윤석중 아동연구소’를 차려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1954년에는 ‘윤석중 아동연구소’의 이름을 바꿔 ‘새싹회’를 창립한다.

선생은 죽음의 그 순간까지 오직 아이들을 위해 살아왔다. 선생은 어른들의 실수로 아이들이 아파하지 않길 바랐으며, 아이들이 항상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다.

선생이 일생 동안 쓴 시가 1300여 편이나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 800여 편이 동요로 불렸고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부천의 창영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강원도, 제주도 등 30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교가를 지어줬다고 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윤석중 선생이 남긴 동요를 살펴보면 아기들의 생활모습은 물론 동물이나 목석하고도 정을 나누며 동심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지금도 새로 신발을 사면 나도 모르게 불러보는 노래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새신’)” 또한 윤석중 선생의 작품이다. 따라 부르기 쉽고 음률을 맞추기가 쉬어 주문처럼 부르던 노래 “무엇이 무엇이 똑같은가 젓가락 두 짝이 똑같아요(‘똑같아요’)”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밥상 위에 젓가락이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나란히’)”도 윤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매일매일 한 곡씩 찾아 불러도 2년을 족히 넘기는 윤석중 선생의 동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동요의 아버지’로 부른다.

▲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도’라는 섬에 가면 동요 가사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동요 ‘꼬까신’를 그려놓은 벽화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제는 동요를 벽화에서 본다

언제부터인가 듣는 라디오에서 보이는 라디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가 ‘라디오’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마치 아카시아꽃 향기를 코로 맡는 것이 아닌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거다. 마찬가지로 동요도 듣고, 부르기만 하는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동요도 그림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도’라는 섬에 가면 재미있으면서도 익숙한 벽화가 눈에 띈다. 동요를 주제로 동네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그래서 사량도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비록 담벼락에 그려진 아이들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화처럼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사량도 외에도 부산지방기상청으로 향하는 골목에서도 동요의 한 소절을 만날 수 있다. 기상청으로 오르는 골목 바닥을 내려다보면 파랗고 빨갛고 노란 발자국과 함께 동요 ‘우산’의 가사가 그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요의 가사와 골목길의 배경이 묘하게도 잘 맞아 떨어진다. 골목길에 그려진 발자국을 따라 껑충껑충 걷다보면 어린 시절, 비 오는 거리를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장난치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다.

동요는 어린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동요를 부르는 데 있어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동요의 노랫말처럼 밝고 희망차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부를 수 있는 노래이자 우리의 잃었던 순수함을 찾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노래다.

신록(新綠)의 계절 5월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마법의 노래 ‘동요’를 불러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온 가족이 다함께 부르는 동요. 이제는 다 커버려 “엄마 앞에서 짝짝꿍, 아빠 앞에서 짝짝꿍”을 하지 않던 아이들이 오랜만에 엄마, 아빠 앞에서 “짝짝꿍”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백은영 기자]

▲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도’라는 섬에 가면 동요 가사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동요 ‘산너머 저쪽’을 그려놓은 벽화 ⓒ천지일보(뉴스천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녹수 2013-06-17 16:46:38
오랫만에 동요 부르니 너무 좋네요~
드라마속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