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주필)

 
핵 공갈을 일삼던 북한이 느닷없이 험악한 표정을 바꾸어 남북 간 대화를 제안함으로써 뜻밖의 관련 회담이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들의 갑작스런 회담 제안은 의아스러운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는 주변 형편이 어렵거나 세(勢)가 불리할 때 공산주의 이념 통치의 나라들이 늘 써오던 상투적인 기만술일 수 있으며 그것에 의존하는 생존 수법일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과 항상 상관성을 가진다. 과연 그러했다. 서울에서 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에 그들은 회담을 무산시켰다.

회담 제안은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에 나왔고 회담을 깨는 짓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게도 회담이 끝난 후에 저질렀다. 그러니까 회담은 애초부터 우리와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활하게도 미국과 중국 두 정상을 향해 꼬리를 흔들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미중 정상회담에 큰 효과를 미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회의가 끝나자 별의별 트집과 꼬투리를 잡아 회담을 깨고 다시 우리를 향해 으르릉거리며 험악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저들은 회담 대표단의 수석대표로 문서상으로는 장관급이라고 속이고 기실은 국장급을 내보내면서 우리더러는 장관급이 수석대표가 돼야 한다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이는 회담에 임하는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케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참을 수 없는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놓고서도 회담이 깨진 것이 우리 탓이며 그들에 대한 도발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 따위 회담이 깨진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아쉬움이나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저들은 저들이 자초한 필연적인 상황에 의해 궁지에 몰려 있으며 초조하다.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두고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체적인 정세의 흐름과 기류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상대가 대화를 하자고 나서는데 명분상 뿌리칠 수는 없지만 굳이 저들과의 회담이, 회담을 위한 회담으로 무익하게 흐르도록 끌려가거나 이용당할 이유가 없다. 국제적으로 고립이 심화돼가는 상황인데다 미국과 중국이 그들의 핵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저들이 살 길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준비하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기대는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그들도 모를 리 없을 것이기에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의한 그들의 진정성에 대해서 그나마라도 긴가민가는 할 수 있었다.

저간에 저들은 우리와 미국을 향해 벌인 희대의 핵 공갈극(劇)에서 그들 정권의 품격과 신뢰를 포함해 잃은 것뿐이지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의 핵 공갈과 도발 위험성이 도를 넘어서 무차별적이고 걷잡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의 멘토 중국마저 그들에 대해서 견지했던 혈맹의 입장을 사뭇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핵을 가진 북한이 오만 방자해져 자칫 자신들에게도 위해가 될 수 있는 통제 불능의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의 핵 위협은 미국의 재균형(Rebalacing) 전략에 따른 태평양지역 군사력 확충의 가속화와 일본의 재무장, 한국의 군사적 대응 태세 강화 등은 필연적으로 불러 중국의 안보 부담을 벅차게 가중시켜 놓게 된다. 이는 목하 미국을 맹렬히 추격 중이며 그 과정에서 정세의 안정이 절대로 필요한 강대국으로의 굴기(崛起)를 마무리하는 데 있어 중국이 결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장애물인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의 대북한 태도 변화는 그들의 국가적 목표 달성과 국익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중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책임을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의 관측보다 더 설득력을 지닌다. 지금의 중국은 역사의 좁은 뒷골목에서 폐쇄의 나라 북한과 혈맹의 우의나 주고받거나 빨간 이념 놀이로 들끓으며 가난했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북한은 넓은 세계로 한창 뻗어 나가는 중국에게 더는 미국 일본과 대항해야 하는 전략적이고 안보적인 자산이라기보다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귀찮은 짐이며 부담이다.

중국의 대북한 태도 변화를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최근 캘리포니아 란초미라지라는 곳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즉 G1 G2 두 정상 간의 편하고 솔직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맞장 토론과 같았던 회담에서 도출된 완벽한 ‘의견일치’다. 바로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합의가 그것이다. 북한을 감싸 안느라 지금까지 미국과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대북한 제재 의지와 어긋나게 나가야만 했던 중국이 이처럼 미국과 극적인 이구동성의 하모니(Harmony)를 이루어냈다는 것은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역사의 큰 물줄기가 소용돌이치며 크게 바뀔 것임을 예고하는 역사적인 대 사변(事變)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유일한 멘토인 중국에 생존을 의존하던 북한에게는 사실상 사형선고와 같다. 그들이 중국과 러시아에 새삼스럽게 특사를 보내고 일본 아베 총리와 관계 개선을 수근거려도 숨통을 조이는 제재의 압박과 고립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 한반도와 관련한 외교적 움직임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데 이어 한중 정상회담이 곧 열린다. 이같이 한국 미국 중국 3국이 연출하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공조(共助) 체제 구축 외교에서 일본은 없다. 반면 박근혜정부의 한국은 당당한 주역이며 3국 외교의 불가결한 연결고리다. 지금으로 보아 일본은 도리어 김정은에게 접근을 꾀하는 공조의 방해자다. 그렇기 때문에 자업자득이지만 그 외교의 드라마에 끼고 싶어도 끼지 못하는 왕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일본과의 접촉이 북한에게 그들 문제를 풀어가는 만족스런 해법을 제공해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살 길은 오직 박근혜정부의 우리와 손잡는 길 뿐이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물론 핵도 포기하고 동시에 도발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예상보다 더 빨리 역사의 지도에서 그 존재가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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