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공휴일 지정·정전 60년 기념, 세계평화작가 한한국 일대기

아내 윤 시인이 그의 제안을 반기며 대답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에요.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동서화합이니 뭐니 떠드는데, 앞으로 진짜 국민화합은 당신의 이 <대한민국 화합지도>가 이룰 거예요.”

“그래요. 지금부터 당장 전국 각 도의 평화‧화합지도를 만들어 기증합시다!”

“아,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 당신은 꼭 해낼 거예요! 저도 힘껏 도울게요.”

한한국은 곧바로 총 13만 8천 자의 한글을 담게 될 9개도의 평화·화합지도를 만드는 대 작업을 시작하였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6년에 걸쳐 이루어진 대작업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세계 평화지도를 그릴 때보다 대한민국화합지도를 그리는 일이 더 어려웠다. 지도 안에 수록할 내용을 모으는 데만도 애를 먹었다. 외국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성경 구절 등으로 채워 넣으면 됐지만, 우리나라 각 도의 경우에는 아내 윤소천 시인이 각 도의 애향심을 노래한 시들을 골라내야 했고, 각 지역의 유적과 발전상 같은 다양한 글들을 찾아내야 했다. 각 도의 분량도 문제였다. 도의 크기에 따라서 지도가 작성되므로 적정량의 내용으로 간추려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힘든 난관에 봉착했다. 하도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작업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더니 급기야는 무릎에서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내가 걷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겠네!”

비명을 지를 만큼 상태가 악화되었고 몸무게도 10㎏이나 빠져버렸다. 거기에 눈도 침침해지고 어깨도 빠지듯 아파와서 도저히 작업을 계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몸이 이 지경이니 어쩌란 말인가?’

그가 괴로움에 몸부림칠 때마다 꿈에 자주 나타나던 도인이 이번에도 한한국을 살려냈다. 그의 눈과 어깨와 무릎을 어루만져 주던 도인이 건넨 약을 받아먹었는데,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기적처럼 몸이 거뜬해지면서 기운이 솟아난 것이다.

이처럼 꿈에서 있었던 일들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기에, 한한국은 지금도 그동안의 모든 작업을 자신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 아니, 어떤 신이 자신에게 들어와 자신의 작업을 시키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네! 저는 당신께 오직 팔만 빌려드렸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끝없는 고행과 같았다. 작업대 위에 한지를 펼쳐놓고 일할 땐 꼿꼿이 서서 작업을 해야 했고, 바닥에 펼쳐서 일할 땐 반드시 엎드려서 글씨를 써야 했기에, 허리도 무릎도 한시도 성할 날이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해도 결코 엄살이 아니다. 일을 계속하다 보면 몸은 어느새 뻣뻣해져 오고, 육체적인 고통으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데도, 그는 작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그런 자신이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져 집 근처에 있는 김포 애기봉에 올라가서 통곡을 하기도 했다.

한한국·이은집 공저

 

▲ 무릎에 피멍이 마른날이 없었던 한한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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