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1989년부터 1996년 사이의 심장마비 환자 3886명 중 1484명이 1년 내에 분노를 터트린 적이 있으며 그중 110명이 화를 폭발시킨 지 2시간 안에 심장마비를 겪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화를 낸 가장 큰 이유는 가정과 직장 문제 문제였다. 미국 사람들도 우리하고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연구팀은 가장 강도 높은 분노 폭발의 경우 평소보다 심장마비 위험이 4배나 더 높다고 밝혔다. 화를 내면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혈압이 높아져 심장병을 일으키게 되는데, 점잖게 화를 내는 사람보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난폭하게 화를 내는 사람일수록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횃불을 들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서면 불꽃이 자신에게 달려들게 돼 있는 것처럼, 화를 내면 상대보다 오히려 자신에게 더 해롭다. 화를 내고 나면 당장 속이 시원할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홧김에 내뱉은 말이나 행동 때문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도 많다. 화가 나더라도 참고 속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심지어 다이어트에 열심인 사람들이 화를 잘 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데이비드 갈 박사의 실험에 따르면, 초콜릿이 먹고 싶은데도 다이어트를 위해 할 수 없이 사과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폭력적인 영화를 더 좋아했다. 터무니없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다이어트 한다고 맛은 없지만 건강에는 더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이 맛은 좋지만 건강에는 해로운 과자를 선택한 사람보다 더 화를 많이 냈다. 이렇게 무엇을 억지로 참으면 쉽게 화를 내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된다.

그래서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화가 났을 때 마음속으로 열을 세거나 큰 숨을 쉬는 것도 그중 하나다. 화가 났을 때 바로 말을 뱉지 말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다음 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도 한다. 이런저런 비결들이 수없이 많지만 화를 참고 다스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거나 죽일 듯이 물어뜯고 싸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나마 화를 낼 수 있는 형편이면 다행이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는 이들도 많다. 서비스 업종에 근무하는 이들은 누구나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조용필의 노랫말처럼 겉으로 웃고 있어도 속이 시커멓게 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상사의 터무니없는 처사에도 웃어넘기거나 횡포를 부리는 갑에게도 웃음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을들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명상 에세이 ‘성난 물소 놓아주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로 유명한 아잔 브라흐마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 물리학도 출신이다. 그는 대학 때 명상을 처음 배웠는데, 명상이 섹스보다 더 즐겁다며 출가했고 이후 세계적인 명상가가 되었다.

그에 따르면 성난 물소를 놓치지 않으려고 줄을 잡아당기면 손에 상처만 날 뿐, 성난 물소를 잡아 둘 수가 없다. 차라리 물소의 코에 꿴 줄을 놓아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욕심이나 분노도 마찬가지다. 성난 물소처럼 놓아버리면 된다.

하지만 이 정도 경지면 도가 턴 사람이다. 놓고 싶다고 다 놓을 수도 없다.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으면 나도 놓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하는 말처럼 공허한 것도 없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게 사람이다. 마음을 편히 가질 재주가 있으면, 그런 재주가 있으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을까.

아무튼 공허하지만, 그럼에도, 화를 내지 말자. 그렇게 용을 쓰면서 견디다 보면, 웃을 때도 있다. 화를 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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