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나라 고조 유방이 드디어 초나라 항우를 전멸시켜 천하를 평정하고 신하들에게 논공행상을 하였다. 고조는 승상 소하에게 제일 큰 땅을 하사하자 신하들의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우리는 싸움터에 나아가서 온갖 고생을 다 겪어 왔습니다. 공훈에 차이는 있을망정 누구나 성을 공략하고 땅을 빼앗는 전쟁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승상 소하는 단 한 번도 싸움에 나간 적도 없고 다만 후방에서 나랏일만 보살펴 왔을 따름입니다. 그런 그가 어찌 우리보다 많은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그 말을 들은 고조가 대답했다. “귀공들은 사냥을 아는가?” 신하들이 알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사냥개도 알고 있겠군.” “예, 그렇습니다.” 그러자 고조가 말했다.

“사냥을 할 때 짐승을 쫓아가서 잡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그 개가 달려 나가게 하는 것은 사람이오. 말하자면 그대들은 도망치는 짐승을 쫓아가서 잡아온 셈이니 공을 따지자면 사냥개의 공이라고 할 수 있소. 그에 비하면 소하는 그대들을 뛰어나가게 한 사람이니 그의 공이 큰 것이오. 그뿐만 아니오. 그대들은 대부분 몸 하나만 가지고 짐을 따라온 것이 아니겠소. 그런데 소하는 자기 가족 중에서도 수십 명을 전쟁터에 내보냈소. 그 공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오.”

그 한마디에 모든 신하들은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제후들에 대한 영지의 분배가 끝나고 그 다음은 조정의 연공에 대한 서열을 추천에 의하여 정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입을 모았다.

“평양후 조삼은 몸에 칠십여 군데의 상처를 입고 용감히 싸웠을 뿐만 아니라 공적 또한 누구보다 큽니다. 그 분이야말로 제 일위에 해당합니다.”

고조는 이미 소하에게 가장 큰 영지를 주었으므로 서열의 문제에 관해서는 신하들에 뜻에 거스르고 싶지 않았으나 그래도 역시 소하를 가장 첫째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

그 눈치를 살핀 관내후(재상에 버금가는 벼슬) 악군이 건의했다.

“여러분의 의견은 다소 편파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양후 조삼께서는 물론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점을 한 번 생각해 봐 주십시오. 폐하께서는 초나라와 싸우시기 오 년간 전쟁에 패하여 부하를 잃고 혼자서 탈출을 꾀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하님은 관중에서 보충 병력을 보내 왔던 것입니다. 폐하의 명령이 있기도 전에 수만 명의 부대가 위급한 전쟁터에 달려온 일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한 평양성에서 한, 초의 양군이 몇 년 동안 공방전을 펼칠 때에도 병력과 군량미가 떨어질 때쯤이면 관중에서 보급이 오고는 하여 우리는 위기 속에서도 배고픔을 모르고 용감히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는 산동에서 여러 번 패하셨습니다만 소하님은 언제든지 귀국하실 수 있도록 관중을 끝까지 굳건히 잘 지켜 주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만세에 빛나는 공적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조삼 같은 분을 백 명 잃었다 해도 우리 한나라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또 조삼 같은 분이 백 명가량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우리 한나라가 만전을 기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때의 공을 만세의 공보다 높이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소하님을 제 일위, 그 다음 자리에 조삼님을 정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그것이 좋겠소” 하고 고조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하여 소하에게는 특전이 주어졌다. 큰 칼 한 벌, 그리고 신발을 신은 채 어전에 오를 수 있고, 궁중에서 보통 신하들과는 달리 종종 걸음을 치지 않아도 된다는 특별대우가 내려졌다.

고조는 연이어 말했다.

“인재를 추천한 자도 후한 상을 받을 만하다고 들었소. 소하의 높은 공도 악군의 추천이 있어 더욱 빛나게 된 것이오.”

그렇게 말하고 악군의 작위를 한 급 올려 안평후에 봉했다. 같은 날 소하의 형제 10여 명에게도 각기 영지를 주고 소하에게는 따로 2천후의 영지를 더 주었다. 고조가 옛날 노역 감독관으로 진나라 함양으로 떠날 때 소하가 다른 사람보다 2백 전 더 많은 전별금을 자기에게 준 일에 보답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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