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안말환, 나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상)
화가 안말환, 나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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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안말환 ⓒ천지일보(뉴스천지)

◆“나의 나무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길 원한다”

봄의 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초록’이라고 답할 것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단단하게 얼어버린 땅속에서 초록의 움을 틔우는 그 강인한 생명력과 만물이 다시 깨어나는 소리가 신성하면서도 싱그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초록을 ‘생명의 기운’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 생명의 근원인 작은 씨에서 싹을 틔우고, 뿌리를 깊게 내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나무를 그리는 이가 있으니 바로 안말환 작가다.

안말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나무는 보는 이들마다 각기 다른 꿈을 꾸게 한다. 작가가 추구하거나 말하고자하는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자유롭다.
‘혼돈 속에서 불안하고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나의 나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신선한 숲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깨끗한 당신의 호흡이 되고자 한다. 또한 작품과 보는 이의 상호 교감을 통해 행복과 함께 희망적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노트 中 -

안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형화된 작품해설이 아닌, 보는 이들이 마음으로 느끼는 진정한 감동이 위안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는다.

“같은 작품을 봐도 사람마다 해석하는 게 다르더라고요. 저는 그런 의도로 그린 것이 아니었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느껴졌던 거죠. 그때마다 새삼스레 다시 깨닫곤 해요. 작가의 역할은 작품이 완성되면 끝난다는 것을요. 내 생각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사람들이 받는 느낌이나 생각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요.”

사진으로만 봤던 작가의 작품을 직접 보고 조심스레 손으로 만져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던 작가만의 독특한 화법(畵法)이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림이라고 하면 단순히 캔버스에 아크릴 등으로 채색을 입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안 작가의 작품에서는 톡톡한 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작가의 나무를 만지면 나무 그대로의 질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화법에 대해 “자연물인 돌가루에 미디엄을 섞어 바탕을 두텁게 올리고 나이프나 못, 조각도 등을 이용해 드로잉을 한다”며 “작품에 있어 마티에르(재질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바탕을 두텁게 올린 후에 서로 다른 색의 물감을 수차례 컬러링하면서 나타나는 색의 조합은 마치 무지개 너머의 유토피아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특히 안 작가의 나무 연작 중 ‘미루나무연작-Happy Trees’가 그렇다. 미루나무를 표현하고 있는 다양한 색의 겹침은 마치 나무의 몸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이는 순전히 안 작가의 작품을 가까이서 접한 기자의 느낌일 뿐, 다른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 기자가 안 작가의 작품을 보고 피안의 세계, 유토피아, 평안 등을 떠올리고 보니 ‘작품과 보는 이의 상호 교감을 통해 행복과 함께 희망적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는 ‘행복’과 ‘희망’이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 든 것이다.

▲ 화가 안말환, 나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내 안의 나무 희망을 말하다.


“처음부터 미루나무를 생각하고 그린 것은 아니에요. 그냥 내 안에 있는 나무를 그린 거지요. 그걸 본 많은 사람들이 미루나무라고 말하는 거예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미루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었던 거죠. 방학 때면 할머니 댁에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마을 신작로에서 버스를 타고 떠나는 손주들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 뿌연 먼지만이 남은 신작로 주변에 서있던 미루나무. 그런 추억들이 잠재의식으로 남아있었던 거죠.”

작가의 추억 한 부분을 차지하는 미루나무는 어린 안말환에게 있어 하늘의 별도 달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야곱의 사다리’와도 같았다. 또한 자신의 꿈을 동그랗게 감싸 안은 누군가의 품처럼 느꼈다.

“제게 있어 고향의 미루나무는 소모되고 또 소모되는 젊음, 하찮은 사욕과 반목, 전통적 가치가 전혀 존중되지 않는 오만, 관용으로 포장된 무관심들 이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자연 속에서 묵묵히 무소유의 가치를 심어줬어요. 캔버스 위에 그린 미루나무가 저뿐만이 아니라 제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평안을 주고 위로를 줬으면 좋겠어요.”

비단 미루나무연작뿐만이 아니다. 안 작가의 바오밥나무연작 또한 ‘Happy Tree’라는 제목으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한가득 심어줬다. 바오밥나무는 아프리카에 사는 나무로, 속이 빈 몸통에 물을 저장해 건기(乾期)에 효과적으로 사용해 ‘생명의 나무’로도 불리는 사랑의 나무다. 작가는 ‘생명’이라는 것에서 영감을 얻은 듯 곡선으로 불쑥 튀어나온 몸통 안에 생명수를 가득 담은 모습으로 바오밥나무를 표현했다.

그는 바오밥나무 몸통 속에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형형색색의 집이 있고, 창문이 있으며 물고기와 태극문양 등의 도형들이 어지러운 듯하지만 질서 있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인지 그의 나무들은 아름답다 못해 찬란하기까지 하다. 미루나무연작에서 뒤늦게 등장한 하얀 새는 마치 안식을 상징하듯 평화롭다. 본디 새는 날아다니는 것으로 표현되거나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경우가 많지만 안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하얀 새는 땅 위를 걸어 다닌다. 심지어는 웃고 있다. 서로 대화를 나누듯 더없이 평화로운 모습이다.

이렇듯 안 작가의 나무 연작(連作)은 나무의 대상만 바뀔 뿐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위안과 평온, 행복, 희망을 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지금, 작가는 사람들이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도록 새로운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Dreaming Tree’라 이름 붙인 그의 또 다른 나무는 바로 ‘소나무’다.

[백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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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희 2013-06-04 16:42:57
우선 작가님의 이름이 특이하고 어려다. 그리고 저 그림 참 멋지다. 가지고 싶다.

이해리 2013-06-04 16:16:27
나무그림 하면 안말환작가가 연상되겠어요
소그림 하면 이중섭 화가가 생각나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