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⑤] “창건했던 사람은 지금 없지만 창건자의 마음은 남아있어요”
[운주사⑤] “창건했던 사람은 지금 없지만 창건자의 마음은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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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거지탑 운주사 입구 불상군 뒷편 암벽 위에 세워진 탑으로 걸레탑, 동냥치탑이라고도 불린다. 자연석 모양 그대로 갖다가 옥개석으로 사용했다. 운주사 석탑의 미(美)의 기준이자, 본보기가 바로 이 거지탑이 아닐까. ⓒ천지일보(뉴스천지)


▶ [운주사④] 편에 이어서

만약 운주사의 석탑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땅에 구현해 놓은 하나의 천문도였다는 주장이 맞아떨어졌다면 이는 정말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종교사에 경종을 울릴만한 대 발견이었을 것이다. 예부터 하늘을 이 지상으로 항상 가까이 내리려고했던 우리 선조들의 민족성이 또 한 번 증명되는 일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왜 그토록 하늘에 관심이 많았을까. ‘하늘의 별따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 ‘하늘이 노한다’ 등 하늘은 지금도 우리가 즐겨 쓰는 말 속에 언제나 있다. 이는 아마도 인간의 근본됨을 하늘에서 찾고자하는 신앙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운주사를 찾은 많은 이들 가운데에 한 보살이 석탑을 향해 공손히 합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작가 그룹과 시끌벅적한 대학생 그룹, 그 외 삼삼오오 운주사를 찾은 이들 중에서 유일하게 불심으로 탑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창건자의 마음으로 다시 운주사를 생각해본다.

창건자는 운주사를 왜 지었을까. 왜 이곳에 그토록 많은 탑과 불상을 만들었을까. 왜 각각 천개씩 만들었으며(불교에서 천이란 숫자는 무한히 많음을 뜻하고, 천불(千佛)은 인간사의 모든 번뇌에서 중생을 구제한다고 한다), 기어코 경사진 바위 위에 탑을 세워야 했던 이유는 뭘까.

탑은 마치 설계도상의 위치대로 세운 듯한데 불상은 그야말로 대중없이 지천에 흩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혹 탑과 불상이 짝을 이루되 탑은 득도한 부처요, 돌부처는 아직 번뇌하는 중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천불천탑 가운데 와불과 시위불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석탑의 모양이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밤하늘을 수놓은 뭇별도 그 밝기와 역할이 다르듯이 탑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토록 다양한 문양과 층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운주사의 와불과 칠성바위가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나타냈듯이, 천불천탑은 무엇을 드러내고자 만든 것일까.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역사를 그림자처럼 실루엣만 드러내되 속살은 감추고 있다가, 미륵불이 오는 날 곧 와불이 일어나는 그 날에 모든 비밀이 풀어지는 것은 아닐까.

[박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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