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 한국문화사와 종교, 사상사, 동아시아 천문사상사를 연구했고 특히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우리 역사 천문연구를 개척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운주사③] 편에 이어서

“옳고 그름보다 문화현상을 이해하는 맥락이 중요”

운주사의 석탑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땅에 구현해놓은 하나의 천문도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일대 파장을 몰고 온 적이 있었다. 1999년 4월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 ‘새롭게 밝혀지는 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에서 운주사의 탑 배치가 일등성 별의 배치와 닮아있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방송을 통해 알려진 후 운주사를 찾는 주말 관광객은 2천여 명에 달했고, 광주 전남 언론들이 앞 다투어 재차 보도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천문학을 전공한 과학동아 기자가 역사스페셜의 주장에 대해 몇 가지 심각한 오류를 제기하면서 그 주장을 뒤엎었고, 현재까지 이렇다 할 반박 없이 잠잠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반박의 논리는 이러하다. 일등성 별 일치설의 기준이 되는 1월 19일이 동서양 천문학의 전통적인 시작점과 무관하며, 현재 탑의 배치는 옮겨진 탑도 있고 없어진 탑도 있어 애초 탑 배치와 불일치하다는 것. 또 일등성 별인데 그 별에 대응하는 탑이 없기도 하고, 이등성 이하의 어두운 별도 포함하고 있는 것 등이다.

당시 과학동아는 지면을 통해 (1999년 7월호 101쪽) “이제 운주사를 찾는 이들이 고려시대의 불탑을 앞에 두고 오리온자리와 시리우스 별을 연결시키는 코미디를 봐야 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견해로 남아있어야 할 섣부른 주장이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보도된 대가다. 이 왜곡된 관념을 지워내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중략) 우리가 과학을 버리고 독단과 과장으로 나아갈 때 천불천탑이 약속한 미륵의 새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상징하는 칠성바위와 와불이 있는 운주사. 고대로부터 밤하늘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밝은 별들을 이미 지상에 구현해낸 운주사에서 수많은 석탑들 역시 하늘의 뭇별을 나타낼 것이라는 상상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논리이다. 다만 현재까지 발굴의 한계와 증거 불충분으로 심증(心證)에 머문 주장으로 인식될 뿐이지 않겠는가.

또한 역사스페셜 방영 당시 불교와 천문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출현했던 김일권 교수는 “당시 저도 천불천탑이 일등성과 연결된다는 멘트를 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근거가 다소 약해서 밤새도록 고민하다 결국 야반도주를 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민감할 일은 아니었어요. 일등성이라 증언했어도 괜찮았다는거죠. 어차피 알 수 없는 것이고, 천불천탑도 별자리로 투영하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문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에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것이지 ‘옳다 그르다’ 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그 당시에는 그런 유연성이 없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박미혜 기자]

▶ [운주사⑤]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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