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신은 한고조에게 녹봉도 격하되고 푸대접을 당한다는 생각으로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과 가까웠던 진희가 거록의 태수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기 전에 자신에게 인사차 들렀다. 한신은 넌지시 진희의 마음을 떠보며 고조에게 반기를 들면 자신이 도성 안에서 호응하겠다는 약조를 받아낸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곳에서 거사의 비밀이 밀고되어 한신은 잡힐 위기에 있었다. 여후와 승상 소하는 한신을 잡아들일 계획을 세웠다.

거록에서 반기를 든 진희가 잡혀서 죽었다는 소식에 열후와 대신들이 축하하는 자리에 한신도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멋모르는 한신이 궁궐 안으로 들어서자 여후의 밀명을 받은 날쌘 군사들이 그를 당장에 잡아 가두어 버렸다. 그런 다음 곧바로 목을 베어 버렸다. 목이 잘리기 전 한신은 이렇게 탄식했다.

“지난날 괴통의 건의를 따랐더라면 오늘날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어처구니없게 아녀자(여후)의 농간에 속아 넘어가는 것도 천명이란 말인가.”

한신의 3족은 여후의 시퍼런 명령에 의하여 떼죽음을 당했다.

고조는 진희의 토벌을 마치고 도성으로 돌아와서 한신이 처형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는 한편으로는 한신이 측은하기도 하여 여후에게 물어 보았다.

“죽기 전에 한신이 뭐라고 했소?”

“괴통인지 뭔지 하는 자의 건의를 묵살한 것이 한스럽다고 뇌까리더이다.” 여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조는 열이 올랐다.

“뭐라고 제나라의 세객 그놈 말이지?”

괴통을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제나라 왕에게 떨어졌다. 괴통이 붙잡혀 도성으로 끌려오자 고조가 직접 심문을 했다.

“네 놈이 회음후에게 모반을 사주했느냐?” 고조의 심문이 추상같았다.

“그렇습니다. 분명 제가 그런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음후는 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자멸을 초래한 것이오. 만일 그 사람이 제 말을 따랐더라면 폐하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고조는 화를 벌컥 내었다.

“저 놈을 당장 가마솥에 넣고 삶아라!”

“폐하, 소인은 너무 억울하옵니다.” 괴통은 반격이 의외로 당당했다.

“모반을 사주한 놈이 뭐가 억울하단 말이냐?”

“노여움을 진정하시고 제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일찍이 진나라가 흔들리자 산동에서는 진왕실과 아무 연고도 없는 자들이 들고 일어나서 제멋대로 왕을 칭하고 군웅 쟁패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호걸들이 다투어 중원의 사슴을 쫓아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자가 사슴을 잡는 데 마침내 성공하였습니다. 도척(춘추시대의 유명한 도적)이 기르는 개가 요제를 보고 짖어댄 것은 요제께서 부덕하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개라는 짐승은 자기 주인이 아닌 누구에게나 짖어 대는 법입니다. 그때 제가 알고 있었던 사람은 한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폐하와는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때 천하에는 폐하와 같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것은 단지 힘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런 자들도 모조리 잡아다가 가마솥에 삶으실 겁니까?”

고조가 괴통의 말을 들어보니 상당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고조가 말했다. “알았다. 너의 처형은 없는 것으로 하겠다.”

괴통은 무사히 풀려 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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