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종교계 인사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종교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문화예술인법회 진철문 회장, 원불교 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정상덕 교무,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인권위원장 진관스님, 예수살기 총무 최헌국 목사,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천지일보(뉴스천지)

보수·진보 교계, 서로의 입장만 내새워
끌려가는 정부·정치권 대책마련 고심하나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차별금지법’을 두고 찬반양론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4월 민주당은 보수 개신교계와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에 결국 무릎을 꿇고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자진 철회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교회 보수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즉각 환영 성명을 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법제정을 찬성해온 진보 개신교계와 불교계, 시민단체들은 강한 유감을표시하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난 1월 법무부는 법제정 의사를 내비치고, 4월 정부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뜻을 전했다. 그 어느 때보다 차별금지법 마련을 위한 여건이 충분히 조성된 것이다. 그럼에도 법제정이 수포로 돌아간 것은 보수 개신교계를 포함한 기득권세력의 반대와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기대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찬성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최근 종교계도 잇달아 찬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신교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 간 바라보는 시각차가 달라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뿐 아니라 종단 간 갈등으로 확산되며 몸살
을 앓고 있다.

종교계에서 바라본 차별금지법안의 핵심 쟁점은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임신, 출산 포함)’ ‘사상과 정치적 의견’ ‘종교 차별’ ‘지역‧전과‧학력’ 등이다. 이달 초 ‘다름도 아름답다’고 선언한 한국종교계가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선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 비난을 사고 있다. 본을 보여야 할 종교인들이 귀는 막고 목소리만 키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 개신교계는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등의 내용을 독소조항으로 보고 강력하게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개신교, 정치·언론 압력도 불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홍재철 대표회장은 법제정 철회 및 폐지를 위해선 정치권과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선포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법안이 제정되면 목회자는 동성애자에 대해 차별적인 설교를 할 수 없다. 또한 개신교인은 선교를 목적으로 이웃 종교인에 대해서도 자극적인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고, 인권위는 조사 후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를 어길 시 이행 강제금(최대 3000만 원)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주요 골자다.

지난 20일 한국교회언론회는 전날 지상파 MBC가 내보낸 차별금지법과 관련 방송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공영방송이 개신교에 대해 매우 의도적인 틀을 만들어 비난했다는 것이다. 교회언론회는 “차별금지법 반대를 개신교만의 주장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매우 악의적”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동성애 반대의견을 비하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개신교계의 입장을 왜곡‧편집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MBC는 (한국교회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언론소비자운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교계는 최근 법조계 개신교인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안 재발의’ 될 것을 대비한 법률지원단을 구성키로 했다.

◆종교계 대부분 ‘찬성’ 한목소리… 법제정 힘 실리나
보수 개신교계의 이 같은 주장에 불교계는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조계종 자승스님은 민주당의 법제정 철회 소식을 접하고 우리나라의 일부 단체들의 인식이 부족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자승스님은 “다문화와 다종교, 인권 등 세 가지를 법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게 차별금지법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며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다문화가정과 종교인들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선 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16일 대한불교청년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는 (민주당이) 일부 개신교계의 궤변을 반대여론 삼아 철회한 것은 변명에 불가하다고 입법 철회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들 단체는 “차별금지법의 목적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및 평등이라는 헌법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한 줌도 안 되는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 제풀에 무릎을 꿇은 것이 솔직한 속내는 아닌지 묻고싶다”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참여불교재가연대는 성명을 내고 “차별 없는 세상이라면 굳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지금처럼 차별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교계도 정치권에 차별금지법안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예수살기 총무 최헌국 목사는 “일부 사람들의 압박 때문에 법안이 철회돼 안타깝다.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종교적 가르침”이라며 “성소수자도 평등할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법제정을 찬성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인권위원장 진관스님도 “차별금지법은 UN의 권고사항이다. 세계 각국과 우리나라도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제정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종교계의 이 같은 찬반 주장을 놓고 향후 추진할 ‘차별금지법 재발의’에 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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