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어머니집 이명자 관장 인터뷰

▲ 오월 어머니집 이명자 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5월 되면 가슴앓이… 몸도 아프고 밥도 잘 못 넘겨
5.18 민주항쟁 겪으며 주변 돌아보는 삶 살게 돼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5월이 되면 괜스레 몸이 아프고 가슴앓이 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생떼 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들. 바로 5.18민주화운동 유가족인 광주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이다.

대부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누나, 어머니, 아내들이다. 이들에게 5월은 어떤 의미인지 이명자(62) 오월 어머니집 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5월만 되면 우리 어머니들은 많이 힘들어하세요. 33년이 흘렀지만 평생 한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죠. 아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날의 참상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식사도 잘 못하시고 많이 외로워하세요.”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을 혼자 견디기 어려워 서로 모여 아픔을 함께 나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오월어머니회가 만들어진 것.

당시 광주시 의원으로 활동하던 이 관장은 오월어머니회가 함께 있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다른 의원들과 함께 힘을 합쳐 지금의 보금자리인 ‘오월 어머니집’을 마련했다.

“대부분 70~80대 후반이세요. 사시는 동안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오월 어머니집이 5.18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죠.”

이 관장은 오월 어머니집을 마련한 것이 가장 보람된 일로 꼽기도 했다. 연로하신 어머니들이 좁은 공간에서 있던 것이 늘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던 것.

그가 이토록 어머니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고자 적극 나선 데는 가슴 찡한 사연이 있다. 결혼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1980년 5월 17일 그의 남편인 정동년(69) 씨가 내란수괴 혐의로 어디론가 붙잡혀 갔다.

그러던 중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얼마 후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는 어느덧 민족투사로 변해갔고 당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안된 갓난아이를 두고 이 관장은 남편을 석방시키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다행히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남편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후 징역 3년형을 살고 출소했다. 이 사건으로 계기로 이 관장은 5.18 유가족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5.18 역사를 겪으면서 저한테는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시간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지금은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광주전남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장, 광주전남 여성단체연합 대표, 전남도의회 의원이었던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오월 어머니집 관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 오월 어머니집 이명자 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오월 어머니집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요가와 노래 교실을 열고 있어요. 마음속 응어리진 슬픔과 한이 그것으로 풀리지는 않겠지만 자체적으로 치유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죠. 같은 아픔을 겪은 분들이기에 서로 이야기 나누며 소통하면서 치유되는 부분이 더 많아요.”

오월 어머니집에서는 매년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숨은 공로자를 선정해 오월어머니상을 시상하고 있다. 올해 오월어머니상은 최루탄 부상자회를 조직해 부상자들을 위한 노력을 기울인 구용기 씨와 남광주‧대인‧양동시장 상인회가 선정됐다.

“이번 오월어머니상에 선정된 재래시장 3곳은 5.18 당시 상인들이 시민군에게 물과 주먹밥, 떡을 나눠주고 쫓기는 사람도 구해냈던 곳이에요. 앞으로도 민주와 인권, 평화를 사랑하는 일에 귀감이 되는 분들을 선정해나갈 거예요.”

특히 이 관장은 오월 어머니집 회원들과 함께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등 다양한 교류사업을 펼치고 있다. 제주 4.3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여수‧순천사건 유족들과도 매년 만난다고.

또 크레인 농성 중이던 부산 한진중공업 현장에 찾아가 부당해고를 호소하는 김진숙 씨를 격려하기도 했다.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소통하면서 치유가 돼가는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승화시켜 이웃의 아픔도 위로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5.18 민주화 정신을 청소년들에게 알리는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학생들을 초청해 5.18 유적지를 돌아보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례집을 만들어 당시 현장을 목격한 증언과 아픔을 기록으로도 남겼다.

“시간이 갈수록 5.18민주화운동이 점점 잊혀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청소년들이 5.18 역사에 대해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통해 고결한 희생으로 이룬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고 이어가길 원하고 이를 위해 우리 어머니들과 함께 앞으로도 힘써 나갈 겁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