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안중근 의사의 공적을 알리다가 중국 정부의 눈밖에 나 40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던 안 의사의 5촌 조카며느리가 하얼빈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 살고 있는 안로길(97) 할머니는 17살 되던 해 안 의사의 사촌동생인 홍근 씨의 3남 무생 씨와 결혼 후 14년 만에 일제의 만행으로 남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죽음으로 안 할머니는 차(車) 씨였던 자신의 성을 안(安) 씨로 바꾸고 독립활동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1958년, 불순분자로 몰리면 처형을 당하는 위험이 엄습해왔던 시기에도 안 할머니는 하얼빈역 광장과 하얼빈 다오리구 공안분국 앞에서 태극기와 안 의사 초상화를 당당히 앞세우며 안 의사의 공적 인정과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다가 반혁명죄로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옥살이 이후 1972년 감옥농장에 넘겨져 6년간 강제노역을 했던 안 할머니는 1998년 9월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출옥했을 때 할머니의 나이는 이미 86세, 모질고 고통스러운 세월도 그의 불타는 애국심을 꺼트리지는 못했다.

평소 태극기 만들기가 유일한 낙이라는 안 할머니는 정성스럽게 태극과 건이감곤을 더듬어 옛 고향과 조국에 대한 향수를 한 땀씩 새겨 넣는다.

현재 갈 곳이 없어 최선옥 수녀가 운영하는 양로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안 할머니는 여전인민이기를 거부하며 천주교 세례명만을 고집하고 있다.

한편 뒤늦게 할머니의 생존 소식을 알게 된 일가친척들은 한국 정부가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 안 할머니의 시조카인 정덕재(71) 씨는 “평생을 바쳐 조국만을 생각했던 외숙모를 위해 조금은 정부가 나서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자유선진당 역시 13일 논평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매국을 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산다’는 말은 흔히 있는 말이지만,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과 그 후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과 관심은 미미하다 못해, 한심하기까지 하다”며 안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안충생 씨는 힙겹게 마지막 생을 보훈병원에서 투병중이지만 찾는 이 하나 없고, 안 할머니 역시 40여 년간의 옥고 끝에 97세의 육신을 홀로 감당하고 있다”면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남은 여생마저 조국이 돌보지 않고 외면하면서, 내일 모레, 전국 각지에서 화려하고 성대하게 8.15 경축식을 치룬들 무엇하랴”고 성토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안 의사의 집안사람이라 해도 직계가족의 독립운동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면 유공자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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