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지난 4.24재보선에 당선된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 등원했지만 4월 임시의회 회기 동안 본회의에 참석했을 뿐 상임위원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16개 상임위 가운데 아직 어느 상임위에도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따라 결원이 된 정무위원회로 가야 하지만 안 의원 개인적 사업과 관련된 그 상임위원회엔 갈 수 없는 형편이다.

국회법(제48조 제6항)에 따르면, 임시회의의 경우에는 회기 중 상임위원회에 배정될 수 없다. 이 조항은 소속 정당이 주요 현안 발생 시마다 정략적으로 상임위를 변경하는 편법을 없애기 위해 만든 규정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재보선에 당선돼 국회에 등원한 의원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은 미처 상정(想定)하지 못한 일로 보인다. 이 잘못된 규정으로 인해 안철수 의원은 의원배지를 달고서 5월 7일 끝난 임시국회 회기 동안 상임위 활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철수 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을 두고 말들이 많다. 신입사원 길들이기라는 말조차 나온다. 안 의원이 정무위원회로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여야가 합의하여 보건복지위 소속인 민주당 이학영 의원을 정무위로 옮기고, 안 의원이 복지위로 들어가는 방안을 가까스로 마련했으나, 국회의장이 국회법을 무시했다며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 강 의장 측은 “국회법 48조 2항에 따르면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의원의 상임위원 선임은 의장이 행한다’고 규정돼 있다”며 “상임위 배정은 법적으로 안 의원이나 여야가 의장을 배제한 채 자기들끼리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강 의장은 자신과 사전 협의 없이 양당 원내대표가 결정해 통보하는 식으로 의견을 전달한 데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법 규정만 본다면 의장이 지적한 사항이 맞다. 교섭단체에 속한 정당의 의원이라면 소속 정당의 원내대표가 결정하여 의장에게 상임위 배정을 요청하지만, 무소속 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은 의장이 행하도록 돼있는 것이다. 의장의 권한을 새누리당과 민주당 원내대표가 결정하여 ‘안철수 의원의 상임위가 복지위로 결정됐다’고 발표까지 해버린 것에 대해 의장 측이 서운했던 모양이다. 여야 원내대표가 무소속 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을 의장이 정한다는 국회법 규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무시해가면서 여야 합의를 해 의장 권한까지 침범하니 정치가 법 위에 존재하는 통치행위로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떻든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 등원한 지 18일이 지났지만 아직 상임위가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점을 던져준다. 손쉬운 방법은 현재 결원이 된 정무위로 가는 것이지만, 정무위가 금융위원회 소관 사항을 관장하고 있어 안 의원이 보유하고 있는 안랩 주식이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무위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안 의원이 사정을 들어 정무위 신청을 거부한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무소속 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을 책임지고 있는 의장이 판단해서 신속하게 결정해야 함에도 가만히 있다가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를 하자 이를 거부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 물론 무소속 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은 의장이 행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다른 상임위로 옮겨줘야 한다. 의장 측에서는 ‘지난 5월 1일 안철수 의원이 강 의장을 예방했을 때에도 상임위 배정에 대한 구체적 요구는 없었다’ 그 주장만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의원은 결원이 있는 정무위에 갈 수 없는 사정을 스스로가 밝혔다. 국회법 제48조 제7항에서도 ‘의장은 의원이 그 직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는 것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해당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강제규정이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이 정무위로 갈 수 없는 법적인 사유와 그 근거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러함에도 단지 의장의 권한만 내세웠지,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상임위가 없는 무소속 의원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안철수 의원이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국회 시스템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지만 국회법이 총선거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만 상정하고 있지,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의원에 대하여는 엇박자다. 그러니 임시회기 내 상임위원회를 배정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은 당연히 문제시되는 조항이다. 이번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경우가 처음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현실에 맞도록 국회법을 고쳐야 한다. 의원이 된 후 국회가 개원됐음에도 어느 상임위에도 참석할 수 없고, 상임위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따른다.

무소속 의원에 대한 상임위 배정은 의장 권한이지만 사전 조정 없이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해 안 의원의 상임위를 복지위로 결정하자 강 의장이 반발한 이번 논란을 두고 국회 차원의 ‘안철수 길들이기’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강 의장 측은 “이번 논란은 법의 문제”라며 “정치 개혁을 말하려면 정치의 원칙과 법을 먼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축했지만, 권리만 주장한 게 아니냐 하는 말도 따른다. 안 의원 스스로 밝혔듯이 정무위 배정은 공정을 기할 수 없는 현저한 사유에 해당되므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속히 결정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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