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용 시집

정지용은 이미지를 잘 사용한 시인이다. 이와 관련해서 시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이동시키거나,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붙여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서 시가 우리의 감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發熱(발열)
정지용(鄭芝溶)
처마 끝에 서린 연기 따러
葡萄(포도)순이 기여 나가는 밤, 소리 없이,
가믈음 땅에 시며든 더운 김이
등에 서리나니, 훈훈히,
아아, 이 애 몸이 또 달어 오르노나.
가쁜 숨결을 드내 쉬노니, 박나비 처럼,
가녀린 머리, 주사 찍은 자리에, 입술을 붙이고
나는 중얼거리다, 나는 중얼거리다,
부끄러운줄도 모르는 多神敎徒(다신교도)와도 같이.
아아, 이 애가 애자지게 보채노나!
불도 약도 달도 없는 밤,
아득한 하늘에는
별들이 참벌 날으듯 하여라.
- 조선지광(朝鮮之光) 69호(1927. 7) -

<발열(發熱)>이란 시를 보면 어린 아들이 열병에 걸려 보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뜨겁고 가녀린 숨을 내쉬고 있다. 그리고 아픈 아이를 위해 불을 땐 방에서는 소리 없는 연기가 포도 덩굴처럼 기어 나가고, 방 전체는 뜨거운 김과 온기로 훈훈하다. 그 열기는 방 자체의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가 내뿜는 가쁜 숨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신에게 간구한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애가 타도록 안타깝게’ 보채고,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기에 아비의 더욱 마음은 아득해지고, 매우 혼란스럽다.

아버지 정지용은 아이를 가슴에 묻어야 했다. 그리고 어린 자식을 잃은 그 애절하고 슬픈 마음을 유리창을 매개로 하여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로 노래한 작품 <유리창1>을 썼다.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보면 잠시나마 아이의 영상이 비치는데 마치 언 날개를 파닥이는 산새와 같다. 그렇게라도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지우고 보고 또 지우고 보는데 여전히 금방 사라진다. 눈물어린 눈에 비친 창밖의 별빛이 마치 그 아이와 같다. 저 하늘의 별이 되었을까? 그렇게 아이는 곁에 잠시 머물다가 산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유리창이 있기에 입김을 통해서나마 아이의 형상을 느낄 수 있지만, 또 유리창이 있기에 아버지가 있는 방안과 ‘새까만 밤’인 창밖의 세계가 단절되기도 한다.

琉璃窓(유리창) 1
정지용(鄭芝溶)
琉璃(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琉璃(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어니,
고운 肺血管(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조선지광(朝鮮之光) 85호(1930. 1) -

정지용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해서 그러한 종교적 성향을 바탕으로 한시를 쓰기도 했다. 한밤에 잠에서 깨어난 후 유리창을 통해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면의 신성(神聖)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하는 과정을 절제된 표현으로 그리고 있는 <별>이라는 시가 그러하다. ‘별’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존재로 화자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성찰하게 만든다. 따라서 ‘별’은 교감과 동경, 순수의 이미지를 지니면서 절대자와 화자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정지용(鄭芝溶)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
진정 멀-고나.
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
金(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
잠 살포시 깨인 한밤엔
창유리에 붙어서 엿보노나.
불현 듯, 솟아날 듯,
불리울 듯, 맞아드릴 듯
문득, 영혼 안에 외로운 불이
바람처럼 이는 悔恨(회한)에 피어오른다.
흰 자리옷 채로 일어나
가슴 우에 손을 념이다.
- 가톨릭靑年 4호(1933. 9) -

기자가 정지용문학관을 간 것은 약 2년 전이다. 소속된 전북중등국어교육연구회에서 정기 세미나를 간 것이다. 정지용문학관은 2005년 문을 열었는데, 문학전시실, 영상실, 문학교실 등이 있어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서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또 문학관은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지용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문학관 옆에는 시인의 생가가 있는데 1996년에 옥천군이 복원한 것이란다.

버스에서 내려 생가와 문학관을 가려면 조금 걸어야 하는데, 주변 가게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가게 벽면을 정지용의 작품 속에서 따온 구절들로 멋지게 장식한 것이다. 정지용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다.

한국 문학계의 거성(巨星)을 이 부족한 글로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마는 위대한 시인이자 아버지, 종교인으로서의 정지용의 일면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김응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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